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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들어서 나뉜 이성계 가문의 휘 (2)

 몽고어 : 울저이 부카[öljei buka]

만주어 : 자라푼 무하샨[jalafun muhaxan]
한문 : 수 망우(夀 牤牛)
음차 : 완자 불화(完者 不花)

※결론 → 이성계의 작은 아버지 울저이 부카는 순수 몽고어로 오래사는 황소란 뜻이다.

-완자불화
 이씨 가문의 적장자 이자흥이 죽자 이복 동생 아하이(나해)는 친형 울저이 부카를 다루가치로 세우기 위해 
 계략을 꾸민다.
 이에 이자춘은 어린 조카 이천계가 적장자라며 원의 승낙을 받아 이천계가 장성할 때까지 임시 다루가치직을 맡는다.
 이자춘은 즉시 이복동생 아하이를 살해한다.
 울저이 부카는 목숨을 잃지 않았고 20여 년을 더 살다 1356년에 사망한다.
 아들 이지는 태조를 따라 장수로도 활약하였고, 영의정으로 치사하였다.

조선왕조실록 태조 총서 中
완자불화(完者不花)는 영돈녕(領敦寧)으로 치사(致仕)한 이지(李枝)의 아버지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9년 1427년 1월 3일 기사中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로 치사(致仕)한 이지(李枝)가 졸(卒)하였는데, 이지는 우리 태조의 종제(從弟)이다. 
이지는 나이 8세에 부모를 여의고 외숙부(外叔父)인 익양군(益陽君) 왕기(王琦)의 집에서 양육되었는데, 
태조께서 잠저(潛邸)로 불러와서 두고 무양(撫養)하기를 심히 두터이 하여 상시 휘하(麾下)에 있게 하였다. 
정사년에 태조께서 왜구(倭寇)를 해주(海州)에서 정벌할 때에 이지가 적진(賊陣)을 돌격하여 죽이고 사로잡은 
것이 많았다. 왜구가 물러갔는데도 이지는 오히려 돌아오지 않으니 태조가 놀라서 말하기를,
“이지는 어디 갔는가.”
하니, 마침 말을 달려와서 뵈옵는지라, 태조가 기뻐하여 말하기를,
“나는 네가 죽은 줄로만 알았다.”
고 하였다. 무진년에 태조가 위화도에서 회군(回軍)할 때, 이지는 중랑장(中郞將)이 되어 날랜 기병(騎兵) 수백 명을 
거느리고 먼저 떠나서, 이틀 걸릴 길을 하루에 달려, 영풍(永豊)의 사저(私邸)를 방위(防衛)하였다. 
임신년에 태조가 나라를 세우자 원종 녹권(原從錄券)을 내리고 상호군(上護軍)에 임명하고, 
이조ㆍ호조ㆍ예조 삼조(三曹)의 전서(典書)를 역임(歷任)하고, 순녕군(順寧君)에 봉해지고, 좌상 군사(左廂軍士)까지 
겸하여 관장(管掌)하였다. 무인년에 어떤 사건에 연좌(連坐)되어 귀양갔었다. 태종(太宗)이 왕위에 오르자, 
불러와서 순녕군(順寧君) 영공안돈녕부사(領恭安敦寧府事)로 복직(復職)되고, 우의정에 승진되어 치사(致仕)하였다. 
얼마 뒤에 영의정에 임명되어 치사(致仕)하고, 다시 영돈녕(領敦寧)이 되어 그대로 치사(致仕)하게 하였다. 
이지의 어머니 기일(忌日)은 섣달 그믐날이고, 아버지 기일(忌日)은 정월 초하루이므로, 매양 세말(歲末)에 죽은 
부모를 위하여 절에 가서 부처를 공양하고 중에게 재(齋)올리는 것으로 떳떳한 일로 삼았는데, 
이 때에도 향림사(香林寺)에 나아가서 부처에게 공양하였다가,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졸(卒)하니, 나이 79세였다. 
부음(訃音)이 위에 들리니, 조회를 3일 동안 정지하고, 부의(賻儀)를 내리고, 관(官)에서 장사지내는 
일을 다스리게 하였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지가 후처(後妻) 김씨(金氏)와 더불어 절에 가서 수일 동안 머물렀는데, 밤에 김씨가 중과 간통(奸通)하므로, 
이지가 간통하는 장소에서 붙잡아 꾸짖고 구타하니, 김씨가 이지의 불알을 끌어당겨 죽였다.”
고 하는데, 그때 따라간 사람이 모두 김씨의 노비(奴婢)였기 때문에 이를 숨겼으니, 외인(外人)들은 알 수가 없었다. 
이지의 전처(前妻) 아들 절제사(節制使) 이상흥(李尙興)이 충청도에서 부고를 듣고 왔는데, 한 남자 종이 
김씨에게 알리기를,
“상흥(尙興)이 장차 이 사실을 형조에 알릴 것입니다.”
하니, 김씨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광(發狂)하여 천치(天癡)처럼 되니, 드디어 일이 잠잠해지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관청에 알려서 시체를 검사하면 원통함을 씻을 수 있을 것이다.”
고 했으나, 상흥(尙興)은 그 실정을 알면서도 관청에 알리지 않았으니, 모두 하늘과 땅 사이에 용납되지 못할 사람이다.
김씨는 곧 조화(趙禾)의 아내이다. 양안(良安)이란 시호(諡號)를 내렸으니, 온량(溫良)하여 즐거워함을 양(良)이라 하고,
화합을 좋아하여 다투지 않음을 안(安)이라 한다. 전처(前妻)에서 네 아들이 있으니, 
이상흥(李尙興)ㆍ이상항(李尙恒)ㆍ이상진(李尙珍)ㆍ이상신(李尙新)이었다.


*울저이 부카의 아들 이지는 79세에 절에 갔다가 첩이 중과 간통하는 현장을 발견하였고

 첩을 구타하다가 첩이 불알을 당기는 바람에 죽고 말았음.


-6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