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고려의 최전방이 공험진인가? 길주인가?
고려사절요 1108년 2월 기사中
○ 윤관이 여진을 평정하고 여섯 성을 신축하였으므로 표문을 받들어 하례하였다. 도령할 좌부승선 예부낭중 임언을 시켜 공을 칭송하는 기문을 지어 영주 남청(南廳)에 걸었다. 또 공험진에 비를 세워 경계로 삼았다.
○尹瓘,以平定女眞,新築六城,奉表稱賀,使都鈐轄,左副承宣,禮部郞中林彥,作記頌功,掛于英州南廳,
又立碑于公嶮鎭,以爲界至。
고려사 1108년 2월 기사中
무신일. 윤관(尹瓘)이, 여진 평정과 6성을 새로 축성한 데 대해 하례하는 표문을 올렸다.
또한 공험진(公嶮鎭)에 비석을 세워 국경으로 삼았다.
戊申 尹瓘以平定女眞, 新築六城, 奉表稱賀. 立碑于公嶮鎭, 以爲界至.
→ 고려사에는 동북9성 관련하여 이상한 기록이 둘 있습니다.
고려사 지리지中
○ 공험진(公嶮鎭). 예종(睿宗) 3년에 성(城)을 쌓고 진(鎭)을 두어 방어사(防禦使)로 삼았고 6년에 산성(山城)을 쌓았다.
○ 길주(吉州). 오래 여진(女眞)의 점령한 까닭에 이름을 궁한촌(弓漢村)이라 하였다.
예종(睿宗) 3년에 주(州)를 두어 방어사(防禦使)로 삼고 6년에 중성(中城)을 쌓았으나 이어 그 땅을 여진(女眞)에게 돌려주었다.
→ 예종 6년이면 1111년입니다. 여진 전쟁이 끝난지 2년이나 지난 후인데,
갑작스레 공험진에 산성을 축성하다니요???
→ 길주 또한 1109년 7월부터 철수작전이 시작된 맨처음 지점입니다.
헌데 갑자기 6년에 중성을 쌓았다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