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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정벌 간단 요약 (3)

 


*고려의 동원현황(1107년 12월~1108년 3월간)
  → 병력 17만, 군인가정 6500호 (5인기준 약 3만3천), 남계백성 68000호 (5인기준 약 34만)
  → 초기에 17만 병력 동원 하였으나, 9성에 계속 유지 한것으로 보이지 않음.
      1144년 건립된 허재묘지명(許載墓誌銘)에 의하면,
      9성 말기 가장 최전방에 있던 길주성을 허재가 130일 동안 병력 2천으로 여진 6만을 방어 하였다고 기록됨
      금사등으로 추정한다면, 당시 여진의 총병력은 완안부의 영향하에 있는 생여진 모든 부족을 합하면
      보기병 2~3만으로 생각됨.
      그러나 9성의 경우 여진이 방어하는 입장에서 삶터를 잃어버린 남녀노소가 합심으로 대항한 것을 상고해 보면, 
      9성 말기에는 보기병외에도 고향을 찾아온 남녀노소의 여진인들이 많았을 것으로 추정되니
      6만도 허언이라고 볼수 만은 없지 않을까 생각됨.

      처음으로 돌아가, 전국에서 동원된 17만의 대군을 9성에 유지시키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였음.
      문종이후 태평성대를 거치면서 고려의 최대 300만석이 저장이 가능한 태창에
      수십~2백만석까지 양곡이 저장 되어 있던것으로 추정하여, 
      양곡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여유가 있다고 보여지나
      (문종중기 다년간 보관되던 태창의 창고에 화재가 발생해 곡식 전소, 
       이후에도 계속 비축하여 창고에 쌀이 썩어갈 지경이였음)
     9성을 축성한 후 농사철이 되어, 정규군을 제외한 일반 민병은 고려로 돌아간 것으로 생각됨
     1108년 4월에 원수 윤관과 부원수 오연총이 개선한 것을 보면, 이때 다수의 민병도 귀환 하였을 것으로 판단됨

     애시당초 고려의 전략이, 병목을 막고 요충지 9성만 방비하며 
     이외의 땅은 남계의 백성으로 개간, 정착한다는 것이였는데 
     즉 백성을 사방으로 풀어 놓고, 성을 지키는게 어려운것이
     동북9성 지역이 험하긴 하나 사방으로 길이 뚫려 있어
     방어가 어려웠으며. 각성이 연계하여 수비작전을 펼치기도 어려웠음.
     이런 상황에서 계속하여 남계의 백성을 유지 시켰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듬.

     고려에서는 9성 축성이후 공격측에서 수비측으로 전략을 전환하였으며,
     1성당 수비 병력 2~3천명을 유지하고, 
     정규군 1만~5만을 각성의 원군으로 편성해 고려 내지에 주둔 했던것으로 보임.
     이주된 군정의 수가 1108년 2월에 6466호 이니, 영구 주둔을 꾀하였던 정규군은 약 7000명 안밖이 될것으로 추정됨
     고려중기의 경우 군반이 세습이 되었기 때문에, 군정 1호에 보통 병졸이 1인이나, 자식이 같이 병이 되거나 망군정인에
     편성 되었을 것으로 추정됨으로 최소 6500에서 많으면 1만정도 전후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됨
     이는 고려 친위군을 제외한 정규군의 16%~25% 였음.

*9성의 규모 환산 추정
 성곽 규모와 군정, 배치된 백성수가 명확히 나와 있는 4성을 기준하여 평균하면
 4성의 총간수는 3386간이며, 군정은 3986호이고, 백성은 34000호
 평균하면 1간당 군정 1.18호, 민호 10.04호 임.
 함주의 경우 군정이 1948호에 민호 13000호이니, 군정을 기준으로 하면 1650간, 민호를 기준으로 하면 1295간임.
 의주의 경우 민호만 7000호이니, 697간, 참고로 똑같은 민호가 배정된 길주가 670간, 복주가 774간임.
 공험진의 경우 군정 532호, 민호 5000호이니, 군정기준 450간, 민호기준 500간임.
 통태진과 평융진의 경우 민호 5000호이니, 민호기준 500간임.

-함주성 : 1295~1650간 추정, 둘레 2.35~3.00km, 면적 345000~562500 ㎡ (약 10만4천평~17만평)
-영주성 : 950간, 둘레 1.73km, 면적 186600 ㎡ (약 5만6천평)
-웅주성 : 992간, 둘레 1.80km, 면적 202500 ㎡ (약 6만1천평)
-복주성 : 774간, 둘레 1.41km, 면적 124000 ㎡ (약 3만7천평)
-길주성 : 670간, 둘레 1.22km, 면적  93000 ㎡ (약 2만8천평)
-의주성 : 697간 추정, 둘레 1.27km, 면적 100000 ㎡ (약 3만평)
-공험진 : 450~500간 추정, 둘레 0.82~0.91km, 면적 42000~51600㎡ (약 1만3천평~1만6천평)
-통태진 : 500간 추정, 둘레 0.91km, 면적 51600 ㎡ (약 1만6천평)
-평융진 : 500간 추정, 둘레 0.91km, 면적 51600 ㎡ (약 1만6천평)
*파란글씨는 추정임


*9성의 관병 및 백성수 추정 (1호 5인 기준)
함주성 : 관병 약 2000 + 군인가족 약 9700명 + 백성 65000명 = 총합 약 76700 명 / 1인당 면적 1.36~2.22평
영주성 : 관병 약 1300 + 군인가족 약 6200명 + 백성 50000명 = 총합 약 57500 명 / 1인당 면적 0.97평
웅주성 : 관병 약 1500 + 군인가족 약 7200명 + 백성 50000명 = 총합 약 58700 명 / 1인당 면적 1.04평
복주성 : 관병 약  700 + 군인가족 약 3200명 + 백성 35000명 = 총합 약 38900 명 / 1인당 면적 0.95평
길주성 : 관병 약  700 + 군인가족 약 3400명 + 백성 35000명 = 총합 약 39000 명 / 1인당 면적 0.72평
의주성 : 관병 약  700                               + 백성 35000명 = 총합 약 35700 명 / 1인당 면적 0.84평
  → 의주성은 군정 이주  기록 없음 / 관병은 민호의 배치가 비슷한 복주나 길주성과 비슷할 것이라고 추정하여 약 700명
공험진 : 관병 약 600
   → 통태진은 군정 이주 기록 없음 / 관병은 민호의 배치가 같은 공험진과 비슷할 것이라고 추정하여 약 600명
평융진 : 관병 약 600                               + 백성 25000명 = 총합 약 25600 명 / 1인당 면적 0.63평
   → 평융진도 군정 이주 기록 없음 / 관병은 민호의 배치가 같은 공험진과 비슷할 것이라고 추정하여 약 600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