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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군의 두만강 도하 가능성 (4)

 [봉오선생]님은 석적환(石適歡) 中 적환(適歡)의 여진 발음이 [시훈][shi hoon] 이라고 하시더군요.

제가 여진문사전에서 확인한 바로는 석(石)의 발음은 [쉬][ʃĩ ] 입니다.
또한 워싱턴 대학의 Chad D. Garcia씨의 논문을 보면 
석적환의 여진어는 Shi shi huan [쉬 쉬 후안]이라고 하더군요.
즉 석적환의 여진 발음은 [쉬시훈], [쉬쉬후안] 이었고, 
이를 고려인들이 지훈으로 표기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지조는 오기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잘은 모르지만 대략 이러지 않았을까요?
1104년 1월 6일 석적환이 기병을 이끌고 부내로의 1753명을 쫓아옴
정주의 고려 통역관 : 너는 누구냐?
석적환 : <태사의 형제인 석적환이다.>
<taifĩ ni axu dou ʃĩ shi hoon>
<타이 수 니 아후 도우 쉬! 시! 훈!>
정주 도령(현 대령급) : 야 뭐라고 하냐?
통역관 : 공의 형인 지훈이라고 하는뎁쇼!
정주 도령 : 고래? 공형 지훈? 

물론 추측일 뿐입니다. 혹여나 공형이 1106년 1월에 입조한 공아(公牙)일 수도 있습니다.

고려사 숙종 9년 1104년 1월 6일 기사中
신사일. 동여진(東女眞)의 남녀 1,753명이 귀부해 왔다.
○ 동여진의 추장(酋長) 오아속(烏雅束)이 별부(別部)의 부내로(夫乃老)와 사이가 벌어지자 공형지조(公兄之助)를 시켜 군대를 동원해 공격하게 했는데, 기병(騎兵)이 정주(定州 : 지금의 평안북도 구성시) 관문 밖까지 와서 진을 쳤다.

고려사 예종 원년 1106년 1월 18일 기사中
신해일. 동번(東蕃)의 공아(公牙) 등 10명이 입조해 오자 국왕이 선정전(宣政殿)에서 이들을 접견한 후 술과 음식 및 전례에 따른 물품을 하사하였다. 애초 임간(林幹)이 정벌에 나서자 동번의 추장 연개(延盖)가 지훈(之訓) 등을 시켜 역습하게 해서 우리 군사를 패전시켰는데 지금 와서 지훈이 공아(公牙)를 보내 입조해 온 것이다. 


여하튼 석적환(공형지조, 지훈 등)이 이끄는 여진 기병이 정주성 밖에 진을 치자, 
이 소식은 곧장 고려의 개경으로 전해집니다.
하니 1104년 1월 8일에 숙종은 임간을 판병마사로 임명해 부월을 주어 현지로 떠나게 합니다.
정말 신속한 조치가 아닐 수 없지요. 
석적환의 여진 기병이 정주성 밖에 진을 친지 이틀도 지나지 않아 
군대를 편성해 정주로 향하게 한 것입니다.
제가 생각키로는 임간의 파병은 여진기병이 정주성 밖에 진을 치기 이전에 
이미 갈라전에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있는 것을 감지한 숙종에 의해 준비되고 
결국 1월 8일에 예정된 일이 아니었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