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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 9성이 두만강일까? (1)

 조선 초기 세종 대왕께서 

<윤관의 공험진>은 조선의 최동북단 두만강 경원군이며,
윤관이 비문을 경원 동북 700리에 있는 선춘령에 세웠다고 실록지리지에 기록하시어, 
조선조 내내 온간 사적에 윤관이 경원까지 쳐들어 와서 경계비를 세웠노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물며 세조의 명신인 신숙주도 경원에 와서 
"오 윤관이 이곳에 비석을 세웠으니 과연 옛적부터 오랑캐와 나뉜 땅이로고~" 
라고 시를 쓰기도 하였지요.

실상 세종도 태조조부터 이어져온 경원=공험진 설에 의문을 가지긴 하였으나
결국 이를 부정하지 않았고, 
뒤이어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는 경원을 공험진 내방소, 선춘령을 공험진 외방소로 
비정하여 당연한 통설로 여겨지게 됩니다.



조선 중기를 거치면서 실학자를 중심으로, 
뭔가 이상하다, 
아뉘 300리가 무슨 1800로 뻥튀기가 되나?
이것 참 고증하자니 세종대왕님 말씀 부정하는 꼴이요, 매국노니 말하기 곤란하도다!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뭐 지금도 비슷한 분위기이긴 하지요. ㅎㅎ
이에 고증을 생명으로 여기시는 진정한 역사학자이자 선비이신 순암 안정복 선생
"개소리다!"  는 오버고 잘못된 건 잘못된 것이다 라고 주장하시게 됩니다.

또한 팔도를 직접 일주하시며 대동여지도를 제작하신 것으로 저의 짧은 평생 동안 알고 있었던
김정호 선생께서도 두만강설과 이북설을 강하게 비판하셨더라고요.
헌데 전국일주설 아닐 수도 있다는 말도 있더라고요, 
미흡한 곳만 수차례 직접 방문하였다고 하는데 아는게 없어서 ^^;;;

김정호 선생의 대동지지는 마땅한 번역본이 없어 발번역 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