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6년 4월 기사中
ㅇ 정응문(鄭應文)과 이후(李侯)를 금 나라에 보내어 신(臣)이라 일컫고 표문을 올리기를, “대인(大人)이 전통을 이어서 사방에 위엄을 떨치니, 다른 나라들이 조하(朝賀)하려고 이역만리를 건너오거늘 하물며 국경이 접해 있으니 정성을 바치는 마음 더욱 간절하지 않겠습니까. 삼가 생각하건대, 천품이 영명하셔서 덕업을 날로 새롭게 하시어 제왕의 조령이 발표될 때마다 모든 백성이 기뻐하지 않는 자 없으며, 위력이 미치는 인근의 적국이 감히 거역하는 자 없으니, 진실로 제왕의 위대한 능력이시며 천지도 은연히 보호하는 바입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신은 소국의 미약한 몸과 변변치 못한 덕으로 위대한 공적을 듣고 경모하는 마음이 간절한 지 오래였으니 약소한 물건으로 충성과 신의를 나타내고자 합니다. 비록 변변하지 못한 예물임을 부끄럽게 여기나, 넓은 도량으로 받아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였다.
ㅇ 금 나라에서 회답하는 조서에, “짐(朕)은 생각하노니, 망하여 가는 것은 없애 버리고, 보존되는 것을 견고히 하는 것은 제왕의 할 일이며,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사직을 보존하는 도리이다. 훌륭하고 큰 인물은 시기를 따라 변통할 줄 아는 원대한 사업을 품는 것이다. 경은 집안이 왕작(王爵)을 전하고 대대로 영토를 누려 왔는데, 글을 올려 존경하는 정성을 극진히 하였고, 토산물을 공납하는 예절을 다하였으며, 이어 낮은 칭호를 사용하였으니, 최고의 예의로 섬기는 뜻을 알겠노라. 무력으로 위협하지 않았고 예물로 회유하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왔으니 역시 좋은 일이 아닌가. 또 군부(君父)로서의 나의 마음이 이미 두터우니, 신자(臣子)로서의 의리를 너는 쉽게 잊지 말라." 하였다.
이로써, 고려와 금나라의 맹약은, 몽고에 의해 금나라가 멸망하게 될때까지, 100여년 동안 굳건히 이어지게 됩니다.
매년 정월이면 서로 사신을 통해 안부를 묻는 편지를 주고 받았으며, 보물등도 주고 받게 되지요.
특별한 외교분쟁없이 백년동안 평화를 이루어냈으니, 이자겸과 척준경의 숭금정책이 꼭 나쁘다고는 볼수 없겠지요.
조금만 더 현명하게 여진 정벌을 이루워냈더라면, 아마 여진족은 완전히 고려에 복속될수도 있었겠지요.
그러면 금도 없었을 것이고, 청도 없었을것이고, 아마 고려는 우수한 군사력으로 동북아 최강국으로 군림할수도 있었을테지요.
다시 고려 내정으로 돌아와서 1126년 3월말 이자겸과 척준경의 사이에 금이 가는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하루는 척준경의 종이, 이지언(李之彦, 이자겸의 아들)의 종과 사소한 말다툼이 있었는데, 이지언의 종이 말하기를
"너의 주인은 왕을 향해 활을 쏘고, 궁궐을 불질렀으니, 죽어 마땅한 죄를 지었으며, 너 또한 적몰되어 관노가 될놈이다"
이때 이미 인종의 교서를 받은 척준경은 마음이 심난한 상태였는데, 종이 이런일을 당했다고 고하자, 척준경은 불같이 화를 내고 당장 이자겸에게 달려가, 관복을 벗어 던지면서,
<내 죄가 크니 마땅히 법을 맡은 관아에 가서 스스로 변명하리라> 말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버립니다.
이자겸이 크게 놀라, 아들 이지미와 이공의를 보내 화해를 청했는데,
척준경 曰
<전날의 난은 모두 너희가 한 짓인데, 어찌 모든것이 나의 죄라 하여 죽어야 된다 하느냐?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 여생을 보내겠다.>
불같이 화를 내고, 고향으로 돌아가 버리겠다고 엄포를 놓는것이 척준경의 특기일듯 합니다.^^;
한편 이를 들은 인종께서는 다시 지추밀원사 김부일(金富佾)에게 안장 갖춘 좋은 말을 척준경에게 전해주어, 거사를 재촉합니다.
한편 4월 조정 개각을 단행해, 칩거에 들어가 있는 척준경에게 문하시랑 판병부사직을 임명하여, 군권을 맡기어 신임을 얻으려 합니다. 당시 이자겸도 척준경을 달래려, 판병부사직 제수에 찬동하게 됩니다. 또한 인종은 최측근인 김부일을 행정을 실질적으로 총괄하던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임명하여, 거사를 준비합니다. 이때 개각에서는 김부식(金富軾)이 차관격인 어사대부 추밀원부사에 임명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시기부터 이자겸은 인종을 제거하기로 마음 먹은듯 싶습니다.
4월에는 안화사에 인종이 거둥(임금의 행차)하였는데, 만조백관이 임금이 탄 말을 향해 절을 하였는데, 이자겸은 태연히 인종을 바라만 보고 있었으며, 5월에는 기어코 인종을 독살할려는 시도까지 하게 됩니다.
1126년 5월 기사中
ㅇ 5월에 연경궁(延慶宮)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자겸이 궁의 남쪽에 거처하면서 북쪽 담을 뚫어 궁 안으로 통하게 하고, 군기고의 갑옷과 무기를 가져다 집 안에 보관하였다. 왕이 일찍이 혼자서 북쪽 동산에 나아가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였다. 얼마 후에 이자겸이 십팔자(十八子=李)의 비결대로 왕의 자리를 도모하고자 떡에 독약을 넣어서 왕께 드렸는데, 왕비가 비밀리 왕께 알려 떡을 까마귀에게 주었더니 까마귀가 죽었다. 또 독약을 보내어 왕비를 시켜서 왕에게 드리게 하였더니 왕비가 대접을 들고 일부러 넘어져 엎질러 버렸다. 왕비는 바로 자겸의 넷째 딸이다.
-5부에서 계속-
5부
척준경 열전을 연재한지 반년만에 드디어 완결을 보는군요.^^;
다음편인 이의민전과 이성계전은 예전에 작성한 적이 있음으로 쉽게 나올듯 합니다.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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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년 5월 재차 이자겸을 척결해 달라는 인종의 요청에 드디어 척준경은 결심을 굳히게 됩니다.
1126년 5월 기사中
ㅇ 척준경이 이미 자겸과 사이가 벌어졌는데 최사전(崔思全)이 또 이 틈을 타서 말하니, 척준경이 마침내 계책을 결정하고 글을 올려, “스스로 충성을 바치겠다." 하였다. 왕이 사람을 시켜 척준경에게 이르기를, “국공(이자겸)이 비록 참람하나, 반란을 일으킨 형적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짐이 만약 먼저 거사 한다면 가까운 사람을 친애하는 본의가 될 수 없는 일이니, 천천히 그 변하는 상황을 기다려 이에 대응하여도 늦지 않다." 하고, 항상 궁중 사람을 시켜 상황을 엿보게 하였다.
몇일 지나지 않아, 드디어 절체절명의 위기가 인종에게 닥치게 됩니다. 두번이나 인종을 독살하려 했던 이자겸은 최후의 수단으로, 군사를 동원해 대궐에 쳐들어가 인종을 살해하고자 합니다. 이런 소식을 듣게된 인종은 급하게 쪽지를 적어서 척준경에게 보내게 됩니다.
1126년 5월 기사中
ㅇ 척준경은 병부에서 무관직의 인사를 맡아 보았다. 왕이 손수 쪽지를 적어서 몰래 내시 조의(趙毅)를 보내어 척준경에게 보였는데 쪽지에 이르기를, “오늘 숭덕부(崇德府)의 군사가 무기를 가지고 대궐 북쪽에 이르러 장차 침문(寢門)으로 들어올 듯하니, 짐이 만일 해를 당한다 하면 실로 부덕한 탓이지만, 원통한 것은 태조가 창업한 뒤 역대 선왕이 서로 계승하여 과인에게까지 이르렀는데, 만일 왕조가 다른 성(姓)으로 바뀌게 된다면, 다만 짐의 죄만이 아니라 실로 보필하는 대신도 매우 수치스러운 바이니, 바라건대 경은 이것을 잘 도모하라." 하였다. 척준경이 곧 어필을 상서 김향(金珦)에게 보이니, 김향이 꿇어앉아 하늘을 우러러 울부짖으며 말하기를, “성지가 이같으니 마땅히 의리상 죽어야 하거늘 공은 어찌 편하게 있겠는가." 하였다.
드디어 척준경이 행동을 개시합니다. 창졸간에 일어난 일이라 무기 대용으로 몽둥이를 들고 대궐로 향하지요. 당시에는 이자겸을 죽일려는 난리가 벌어진지 두달밖에 안되던 때라, 이자겸이 모든 무기를 회수해 자기집 창고에 보관해 둔 상태였고, 황궁 수비를 위한 일부 무기만이 군기감에 보관하였다가, 출근하는 군사들도 군기감에서 무기를 인출해 번을 서다가, 퇴근하면서 반납하는 상황이였던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