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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치킨게임(1)

 누가 먼저 죽는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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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1109년 상황


1. 전국의 병력 징발하여 동북9성에 꼬라박음


1월~4월

-예종 갈라전(현 함경도)의 항복한 여진추장들 접견

-계속 군대를 동북9성에 보냄

-동북9성 최북단 길주성 여진 대군에 포위당함

-동북9성 고려군 사상사 다수 발생하고 사기 저하됨


5월

-오연총에 대군을 주어 동북9성에 파견

-길주성으로 가던 도중 여진군의 기습을 당해 대패



2. 병력 징발에 대한 반발이 극심하고 기근+유행병 크리


5월

-전국에서 병력 징발에 대한 반발 심함

-기근, 유행병 발생

-백성들 원망이 매우 심함


고려사절요 1109년 5월 기사中

동계병마원수 윤관을 서북로에 보냈다. 군신을 선정전에 모아 여진에게 9성을 돌려 주는 일의 가부를 물었다. 

이전에 의논하는 자들이 모두 말하기를, 

“여진의 궁한리(弓漢里) 밖은 산이 잇달아 벽처럼 서 있는데, 오직 작은 길 하나가 겨우 통하니, 

  만약 관성(關城)을 설치하여 작은 길을 막는다면 여진에 대한 근심이 영구히 끊어질 것이다."

 고 하였더니, 그것을 빼앗아 놓고 본즉 수륙의 도로가 가는 곳마다 통하지 않음이 없어 앞서 듣던 바와 아주 판이하였다.

 여진은 이미 소굴을 잃자, 맹세코 보복하고자 먼 곳의 뭇 추장을 이끌고 해마다 와서 공격하는데 

 속임수와 장기를 쓰지 않는 것이 없었다. 

 성이 험하고 튼튼하여 쉽게 함락당하지는 않았으나, 싸우고 지키느라 우리 군사의 손실 역시 많았다. 

 더구나 개척한 땅이 너무 넓어서, 9성이 서로의 거리가 요원하고, 

 골짜기와 동네가 깊고 멀어 적은 복병을 매복하여 왕래하는 사람을 노략질함이 잦았다. 

 국가에서는 여러 방면으로 군사를 징발하니, 중외가 소요한데다 기근ㆍ유행병까지 겹쳐 백성의 원망이 드디어 일어났다.

 여진도 전쟁에 싫증이 나고 괴로워, 또 사신을 보내어 강화를 청하고, 옛 영토를 돌려 주기를 요구하였다. 



→ 요약 : 어떤 놈이 동북 9성으로 가는 길이 하나라고 한겨?

          점령하고 보니 최전방 길주만 공격당하는 게 아니라 다른 성들도 무차별적으로 공격당하자나!!

          계속 병력 뽑아서 동북9성에 처박는데 계속 죽어대니 전국에서 민란 발생할 가능성 매우 높음

          농사철에 농사도 못 지어서 기근 발생한데다가 유행병까지 돌고 있어.

          마침 여진족도 그만 싸우자고 하니 이제 그만 하는 게 어뗘?



3. 어? 부모의 나라라고 화친을 애걸하네?


-6월 고려에서 다시 길주성 포위를 뚫기 위해 윤관에게 대군을 주어 보냄

-완안부에서 화친하자고 사신 보냄

-윤관 완안부 사신을 개성으로 보내고 대기함.

-완안부 사신 예종을 만나 화친 애걸


고려사절요 1109년 6월 기사中

선정전 남쪽 문에 거둥하여 요불 등 6명을 인견하고, 온 까닭을 물었다. 

요불 등이 상주하여 아뢰기를, 

 “옛날에 우리 태사 영가(盈歌)가 일찍이 말하기를, 

  우리 조종은 대국(고려)에서 나왔으니 자손에 이르기까지 귀부해야 한다 하였고, 

  지금 태사 오아속이 역시 대국을 부모의 나라로 알았습니다. 

  근자에 궁한촌(弓漢村) 사람이 스스로 불안하게 일을 일으킨 것이요, 태사의 지휘가 아닌데 

  국조(國朝 고려)에서 경계를 침범한 죄로 토벌하였고, 

  다시 수호를 윤허하므로 우리는 이를 믿고 조공을 끊지 않았더니, 

  뜻밖에 작년에 대거 들어와 우리 늙은이와 어린이를 죽이고, 

  9성을 쌓아 남겨진 백성으로 하여금 마음 편안히 돌아갈 곳이 없게 할 줄은 몰랐습니다. 

  이 때문에 태사가 저를 보내서 옛 영토를 돌려 달라고 청하는 것이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가엾게 여겨 9성을 돌려 주기를 윤허하여 우리들을 편안히 살게 해 주시면, 

  우리들은 하늘에 고하여 맹세를 하고 대대로 자손에 이르기까지 세공을 정성껏 닦고, 

  또 감히 기와와 작은 돌도 경계 위에 던지지 않겠습니다." 



4. 내 관대하게 화친을 윤허하노라!


-7월 예종 화친 윤허

-동북 9성과 인마를 모두 철수시킴

-완안부 철수하는 고려 백성을 실어 나름


고려사절요 1109년 7월 기사中

가을 7월에 재신과 추신 및 대성(臺省)ㆍ제사(諸司)ㆍ지제고(知制誥)ㆍ시신ㆍ도병마판관 이상 

문무 3품 이상을 선정전에 모아 9성을 돌려 주는 일을 의논하니, 

모두 돌려 주는 것이 옳다고 말하였다. 

왕은 선정전에 거둥하여 요불 등을 인견하고 9성을 돌려 줄 것을 윤허하였다. 

요불이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절하고 사례하였다.


행영병마별감 승선 최홍정과 병마사 이부상서 문관 등이 여진 추장 거울이(居熨伊)에게 선유(宣諭)하기를, 

“너희가 만약 9성을 돌려 줄 것을 청할진댄, 마땅히 이미 맺었던 약속대로 하늘에 맹세하여 고하라."

하였다. 

추장 등이 단을 함주문 밖에 설치하고 맹세하여 고하기를, 

이제부터 나쁜 마음을 버리고 대대로 조공을 드릴 것이다. 이 맹세에 변함이 있으면 번토(蕃土)는 멸망하리라.

하였다. 맹세를 마치고 물러갔다. 

홍정 등이 비로소 9성을 철수하여 길주로부터 차례로 전투장비ㆍ식량을 내지로 거두어들였다. 

여진은 기뻐하여 그들의 소와 말로 뒤에 처진 우리 백성의 노유ㆍ남녀를 실어 돌려보내고, 

한 사람도 살상함이 없었다. 임의 등은 지체되어 국경의 일을 하나도 하지 않고 돌아왔다.



요약 : 병력 계속 꼬라박고 기근+유행병 크리까지 먹었는데 

       여진놈들이 애걸하니 한번 봐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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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안부 1109년 상황


1. 각부족 총 동원하여 갈라전에 축차 투입함


금사 알새 열전中

斡賽將內外兵,劾古活你茁、蒲察狄古乃佐之。

高麗兵數萬來拒,斡賽分兵為十隊,更出迭人,遂大破之。

알새가 내외의 병력을 이끄는 장수가 되었고, 핵고활니줄과 포찰적고내로 보좌케 하였다.

고려의 병력 수만이 방어하여 오니, 

알새가 병력을 10대(隊)로 나누어 번갈아 가며 출병하게 하였고 마침내 고려군을 대파하였다.



2. 흉년 발생+도적떼 들끓음


금사 강종 본기 1109년 기사中

七年己丑,歲不登,減盜賊征償,振貧乏者。

강종 7년 기축년(1109년)에, 이해에 흉년이 들자,

도둑이 배상하는 것을 감해주고, 빈핍한 자를 구휼하였다.


금사 태조 본기 기사中

康宗七年,歲不登,民多流莩,強者轉而爲盜。

강종 7년(1109년)에, 이해에 흉년이 들자, 백성 다수가 떠돌고 굶어죽었는데,

강한 자는 도적으로 바뀌었다.



3. 어? 고려가 화친을 청하네? 내 화친을 베푸노라!


금사 알새 열전中

七月,高麗請和,盡歸前後亡命及所侵故地,退九城之戍,遂與之和。

1109년 7월에 고려가 화친을 청하여,

전후로 고려로 망명한 자들과 더불어 침략한 옛 땅을 모두 돌려줬으며 9성의 병사를 퇴각시키니 

마침내 화친을 베풀었다.



요약 : 병력 계속 축차투입해서 승기는 잡았는데, 죽여도 계속 몰려오네?

       흉년에 도적떼 창궐...상황 최악임...

       마침 고려에서 화친 요청하니 화친을 베푸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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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 <아임 유어 파더>의 나라니 다시는 돌 하나도 던지지 마라!

                                   내 관대하게 화친을 윤허하노라!!!


 

                          완안부 : 질 것 같으니 화친하자고?

                                   그래 내 관대하게 화친을 베푸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