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관 1년 후 1645년 4월 청군이 10일간 80만 명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진 양주십일기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7부-함락2일차(1) 젖먹이들이 길가에 간과 뇌를 흩뿌리다!
8부-함락2일차(2) 고려여자들은 절개를 지켰는데, 너희 중국인은 수치를 모르는가?
원문 출처 : https://zh.wikisource.org/zh-hant/%E6%8F%9A%E5%B7%9E%E5%8D%81%E6%97%A5%E8%A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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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月廿七日】
廿七日,問婦避所,引予委曲至一柩後,古瓦荒磚,久絕人跡,
予蹲腐草中,置彭兒於柩上,覆以葦席,婦僂居於前,我曲附於後。
揚首則露頂,展足則踵見,屏氣滅息,拘手足為一裹,魂少定而殺聲逼至,刀環響處,愴呼亂起,齊聲乞命者或數十人或百餘人。
遇一卒至,南人不論多寡,皆垂首匐伏,引頸受刃,無一敢逃者。
至於紛紛子女,百口交啼,哀鳴動地,更無論矣!
日向午,殺掠愈甚,積屍愈多,耳所難聞,目不忍視,婦乃悔疇昔之夜,誤予言未死也。
然幸獲至夕,予等逡巡走出,彭兒酣臥柩上,自朝至暮,不啼不言,亦不欲食,或渴欲飲,取片瓦掬溝水潤之,稍驚則仍睡去,
至是呼之醒,抱與俱去。
洪嫗亦至,知吾嫂又被劫去,吾侄在襁褓竟失所在,嗚呼痛哉!
甫三日而兄嫂弟侄已亡其四,煢煢孑遺者,予伯兄及予婦子四人耳!
相與覓臼中餘米,不得,遂與伯兄枕股忍飢達旦。
是夜予婦覓死幾斃,賴洪嫗救得免。
27일에 부(婦)에게 피소(避所)를 문(問)하니, 위곡(委曲/구불구불한 길)으로 인여(引予)하여
일구(一柩)의 후(後)에 지(至)하였다.
고와(古瓦/오래된 기와)와 황전(荒磚/거친 벽돌)은 인적(人跡)을 구절(久絕)하였다.
나는 부초(腐草/썩은 풀) 중(中)에 준(蹲/웅크리고 앉음)하였고, 구상(柩上)에 팽아(彭兒)를 치(置)하였고,
다시 위(葦/갈대)로써 석(席/자리를 깖)하였으며, 부(婦)는 전(前)에 누거(僂居/구부려 앉음)하였고,
나는 후(後)에 곡부(曲附/몸을 굽혀 바짝 붙음)하였다.
양수(揚首/머리가 올림)하면 즉(則) 노정(露頂/정수리가 드러남)하였고,
전족(展足/발을 폄)하면 즉(則) 종견(踵見/발꿈치가 보임)하여, 병기(屏氣/숨은 기운)가 멸식(滅息/없어짐)할 것이니,
수족(手足)을 구(拘/굽힘)하여 일과(一裹/하나로 얽힘)로 삼았는데,
혼(魂)이 소정(少定)하였는데 살성(殺聲)이 핍지(逼至)하였고, 도환(刀環/칼 코등이)이 향처(響處/곳곳에 울림)하였고,
창호(愴呼/슬피 울부짖는 소리)가 난기(亂起)하였고, 걸명(乞命)을 제성(齊聲/여러 사람이 일제히 소리를 지름)하는 자(者)가
혹(或) 수십인(數十人)이거나, 혹(或) 백여인(百餘人)이었다.
1졸(卒)의 지(至)를 우(遇)하면, 남인(南人)은 다과(多寡)를 부론(不論)하고,
모두 수수(垂首/머리를 숙임)하고 복복(匐伏/꿇어 엎드림)하여, 인경(引頸/목을 늘임)하고 수인(受刃/칼날을 받음)하니,
1인도 감히(敢) 도자(逃者)가 없었다.
분분(紛紛/잇달음)히 자녀(子女)에 지(至)하면, 100구(口)가 교제(交啼/서로 소리 내어 욺)하였고,
애명(哀鳴/애처로이 소리내어 욺)이 동지(動地/땅을 움직임)하였으니, 다시 논(論)하지 못할 뿐이로다!
날이 향오(向午)하자, 살략(殺掠)이 유심(愈甚/점점 더 심해짐)하였는데, 적시(積屍)는 유다(愈多)하였고,
이소(耳所)는 난문(難聞)하였고, 목(目)은 시(視)를 부인(不忍)하였는데,
부(婦)가 이에 주석(疇昔/어제)의 야(夜)를 회(悔)하였는데, 나의 말을 오해(誤)하여 미사(未死)하였었다.
그러다 행획(幸獲)하여 지석(至夕)하였는데, 우리들은 준순(逡巡/뒤로 멈칫멈칫 물러남)하여 주출(走出/달아남)하였고,
팽아(彭兒)는 구상(柩上)에 감와(酣臥/깊이 잠듦)하였는데, 조(朝)로부터 모(暮)에 지(至)하였는데,
부제(不啼/울지 않음)하고 불언(不言/말을 안 함)하였고, 역시(亦) 식(食)하고자 하지도 않았는데,
혹(或) 갈(渴)하면 음(飲)하고자 하였고, 편와(片瓦/기와 조각)를 취(取)하여 구수(溝水/도랑물) 한 움큼을
윤지(潤之/적시게 함)하였는데, 초경(稍驚/문득 놀람)하더니 곧 이내 수거(睡去/잠듦)하였는데,
이에 이르러 호(呼/부름)하여 성(醒/잠이 깸)하였고, 포(抱)하여 함께 갔다.
홍구(洪嫗) 역시(亦) 지(至)하였는데, 나의 수(嫂)가 또 피겁(被劫)하여 거(去)했음을 지(知)하였다.
나의 질(侄)은 강보(襁褓)에 있었는데, 마침내 소재(所在)를 실(失)하니, 오호통재(嗚呼痛哉/아아, 슬프고 원통하도다!)라!
겨우 3일(日)만에 형(兄), 수(嫂), 제(弟), 질(侄)이 이미(已) 그 4명이 망(亡)하였으니,
경경(煢煢/매우 외로움)의 혈유(孑遺/약간의 나머지)한 자(者)는, 나 및 백형(伯兄)과 더불어 나의 부자(婦子) 4인(人)뿐이로다!
상여(相與/서로 함께) 구중(臼中/절구 속)의 여미(餘米)를 멱(覓/찾음)하였으나, 부득(不得)하였고,
마침내 백형(伯兄)과 함께 침고(枕股/넓적다리를 베개 삼음)하여 인기(忍飢/배고픔을 참음)하며
달단(達旦/이튿날 아침까지 이름)하였다.
이 밤에 나의 부(婦)가 멱사(覓死/죽음을 구함)하여 기폐(幾斃/거의 죽음)하였는데,
홍구(洪嫗)를 뢰(賴/의지함)하여 득면(得免)을 구(救)하였다.
27일에 부인에게 피할 곳을 물으니 나를 이끌고 구불구불한 길을 통하여 한 관(널)의 뒤에 이르렀다.
오래된 기와와 거친 벽돌은 인적을 오랫동안 끊었다.
나는 썩은 풀 속에 웅크리고 앉았고 관위에는 팽아를 둔 다음에 다시 갈대로 덮었으며
부인은 앞에 구부려 앉았고 나는 뒤에 몸을 굽혀 바짝 붙었다.
머리가 올라가면 즉 정수리가 드러났고, 발을 펴면 즉 발꿈치가 보이니 숨은 기운이 없어질 듯 하여
수족을 굽혀 하나로 얽히게 하였다.
혼이 조금 진정되었는데 죽이는 소리가 가까이 이르렀고, 칼코등이가 곳곳에 울리니 슬피 울부짖는 소리가 어지럽게 일어났다.
목숨을 애걸하며 소리 지르는 자들이 혹 수십인이거나 혹 백여인이었다.
1졸의 오는 것을 만나면 남인은 많고 적음을 논하지 않고 모두 머리를 숙이고 꿇어 엎드려 목을 늘리고 칼날을 받으니
한 사람도 감히 도망가는 자가 없었다.
잇달아 아들과 딸에 (병졸이) 이르면 100개의 입이 서로 소리 내어 울었는데
애처로이 우는 소리가 땅을 움직이니 다시 논하지 못할 뿐이로다!
날이 정오로 향하자 죽이고 노략질하는 것이 점점 더 심해졌는데 쌓인 시체는 점점 더 많아졌고,
귀는 듣기 어려웠고, 눈은 차마 보지 못하였는데 이에 부인이 어젯밤을 후회하였는데, 나의 말을 오해하여 죽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다 요행을 얻어 밤에 이르렀는데 우리들은 멈칫멈칫 물러나 달아났다.
팽아는 관위에서 깊이 잠들었었는데 아침부터 밤에 이르기까지 울지도 않고 말도 안 하고 또한 먹고자 하지도 않았는데,
혹 갈증이 날까 마시게 하고자 기와 조각을 취하여 도랑물 한 움큼으로 적시게 하였는데 문득 놀라더니 곧 이내 잠들었었다.
이에 이르러 불러 깨우고 안아서 함께 갔다.
홍 할머니 또한 이르렀는데 나의 형수가 또 위협을 당하여 가버린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조카는 강보에 있었는데 마침내 있는 곳을 잃게 되니 오호통재라!
겨우 3일 만에 형, 형수, 동생, 조카가 이미 4명이나 망(亡)하였으니
매우 외롭게 약간 남은 자들은 나와 큰형, 더불어 나의 부인, 아들 4명뿐이로다!
서로 함께 절구 속의 남은 쌀을 찾았으나 얻지 못하였고
마침내 큰형과 함께 다리를 베개 삼아 배고픔을 참으며 이튿날 아침에 이르렀다.
이 밤에 나의 부인이 죽음을 구하고자 거의 죽게 되었는데 홍 할머니를 의지하여 목숨을 구하였다.
요약.
양주성 함락 4일차 1645년 4월 27일 아침 왕수초는 처자를 데리고 인적이 끊긴 곳에 방치된 관뒤에 숨는다.
관위에 아들 팽아를 올려놓고 갈대로 가렸으며 왕수초와 부인은 관뒤에 웅그리고 앉아 숨었다.
결국 근처까지 청군이 몰려와 100여 명의 사람들을 학살하였는데 모두 살려달라 애걸하였다.
그러나 결국 자포자기하고 목을 내밀어 차례대로 처형을 당하였다.
아이들 차례가 오면 부모들은 애처롭게 울부짖었고 왕수초는 참혹하여 차마 보고 들을 수가 없었다.
아내는 지난밤에 자살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였고, 아들 팽아는 하루 종일 울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는데 갈증이 날까 하여 도랑물로 입술을 젖시었으나 깜짝 놀라더니 다시 잠들었다.
무사히 하루가 지나가고 밤이 오자 왕수초는 자고 있던 아들을 깨워 아내와 함께 다시 큰형 집으로 갔다.
형수가 청병에게 끌려가고 젖먹이 조카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자 왕수초는 심히 괴로워하였다.
이날 밤에 아내가 자살을 시도하였는데 홍 할머니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11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