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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대학살 12부-함락5일차(1) 흉폭한 한족 팔기군 병사!

 입관 1년 후 1645년 4월 청군이 10일간 80만 명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진 양주십일기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1부-도르곤<사가법 선생! 같이 갑시다!>

2부-도도<반항하는 양주성을 도륙 냈나이다!>

3부-함락 하루 전...잔치를 벌이다

4부-함락1일차(1) 낙성임박! 이중인격자 사가법!

5부-함락1일차(2) 아내에게 자살을 권유하다!

6부-함락1일차(3) 살육의 밤 공포에 떨다!

7부-함락2일차(1) 젖먹이들이 길가에 간과 뇌를 흩뿌리다!

8부-함락2일차(2) 고려여자들은 절개를 지켰는데, 너희 중국인은 수치를 모르는가?

9부-함락2일차(3) 구사일생 처자와 상봉하다!

10부-함락3일차 학살에 울부짖는 아이들과 울지 않는 젖먹이

11부-함락4일차 청 한족 장군이 한족들을 살리다!


원문 출처 : https://zh.wikisource.org/zh-hant/%E6%8F%9A%E5%B7%9E%E5%8D%81%E6%97%A5%E8%A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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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십일기(揚州十日記) 中

【四月廿九日】

次日,則廿九矣。

自廿五日起,至此已五日,或可冀幸遇赦,乃紛紛傳洗城之說,城中殘黎冒死縋城者大半,

舊有官溝壅塞不能通流,至是如坦途,夜行晝伏,以此反罹其鋒。

城外亡命利城中所有,輒結伴夜入官溝盤詰,搜其金銀,人莫敢誰何。

予等念既不能越險以逃,而伯兄又為予不忍獨去;

延至平旦,其念遂止;

原蔽處知不可留,而予婦以孕故屢屢獲全,

遂獨以予匿池畔深草中,婦與彭兒裹臥其上,有數卒至,為劫出者再,皆少獻賂而去。

繼一狠卒來,鼠頭鷹眼,其狀甚惡,欲劫予婦;

婦偃蹇以前語告之,不聽,逼使立起,婦旋轉地上,

死不肯起,卒舉刀背亂打,血濺衣裳,表裡漬透。

先是婦戒予曰:

「倘遇不幸,吾必死,不可以夫婦故乞哀,並累子;

我死則必死子目,俾子亦心死。」

至是予遠躲草中,若為不與者,亦謂婦將死,而卒仍不捨,屢擢婦髮周數匝於臂,怒叱橫曳而去。

由田陌至深巷一箭地,環曲以出大街,行數武必擊數下。

突遇眾騎至,中一人與卒滿語一二,遂舍予婦去。

始得匍匐而返,大哭一番,身無完膚矣!

忽又烈火四起,何家墳前後多草房,燃則立刻成燼;

其有寸壤隙地,一二漏網者,為火一逼,無不奔竄四齣,出則遇害,百無免一。

其閉戶自焚者由數口至數百口,一室之中,正不知積骨多少矣!

大約此際無處可避,亦不能避,避則或一犯之,無金死,有金亦死;

惟出露道旁,或與屍骸雜處,生死反未可知。

予因與婦子並往臥冢後,泥首塗足,殆無人形。

時火勢愈熾,墓木皆焚,光如電灼,聲如山摧,悲風怒號,令人生噤,赤日慘淡,為之無光,

目前如見無數夜叉鬼母驅殺千百地獄人而馳逐之。

驚悸之餘,時作昏眩,蓋已不知此身之在人世間矣。

驟聞足聲騰猛,慘呼震心,回顧牆畔,則予伯兄復被獲,遙見兄與卒相持,兄力大,撇而得脫,卒走逐出田巷,半晌不至;

予心方搖搖,乃忽走一人來前,赤體散髮。

視之,則伯兄也;

而追伯兄之卒,即前之劫吾婦而中途捨去者也。

伯兄因為卒所逼,不得已向予索金救命,予僅存一錠,出以獻卒,而卒怒未已,舉刀擊兄,兄輾轉地上,沙血相漬,註激百步。

彭兒拉卒衣涕泣求免,(時年五歲)卒以兒衣拭刀血再擊而兄將死矣。

旋拉予髮索金,刀背亂擊不止,予訴金盡,曰:

「必欲金即甘死,他物可也。」

卒牽予髮至洪宅。

予婦衣飾置兩瓮中,倒置階下,盡發以供其取,凡金珠之類莫不取,而衣服擇好者取焉。

既畢,視兒項下有銀鎖,將刀割去,去時顧予曰:

「吾不殺爾,自有人殺爾也。」

知洗城之說已確,料必死矣。

【4월 29일

차일(次日)은 즉(則) 입구(廿九)였다.

25일로부터 기(起)하여, 이에 이미 5일에 지(至)하였으니, 혹(或) 가히(可) 기행(冀幸/요행을 바람)하고 

우사(遇赦/사면을 얻음)할까 하였는데, 곧 분분히(紛紛) 세성(洗城/성민을 도륙함)의 설(說)을 전(傳)하니,

성중(城中)의 잔여(殘黎/남은 백성)은 모사(冒死)하여 추성(縋城)하는 자(者)가 대반(大半)이었고,

오래된 관구(官溝/해자)가 있었는데 옹색(壅塞/막힘)하여 통류(通流)할 수 없었고,

이에 이르러 탄도(坦途/평탄한 길)와 같으니, 야행주복(夜行晝伏)하였고,

이로 인하여 그 봉(鋒)에 반리(反罹/도리어 재앙에 걸림)하였다.

성외(城外)의 망명(亡命/도망함)이 성중(城中)의 소유(所有)를 리(利/탐함)하여,

문득 결반(結伴/짝을 이룸)하여 관구(官溝)에 야입(夜入)하여 반힐(盤詰/심문함)하여,

그 금은(金銀)을 수(搜/뒤짐)하니, 사람마다 감히(敢) 수하(誰何/누구냐고 물어봄)하지 못하였다.

우리들은 염(念)하기로 이미 월험(越險)하여 이로써 도(逃)할 수가 없다 하였고,

백형(伯兄) 역시(又) 나 때문에 독거(獨去)를 불인(不忍)하였다.

이어 평단(平旦/동 틀 무렵)에 이르자, 그 염(念)이 마침내 지(止)하였다.

원(原) 폐처(蔽處/가린 곳)는 유(留)할 수 없음을 지(知)하였고, 

나의 부(婦)는 잉(孕)함으로써 이런 연고(故)로 누누이(屢屢) 획전(獲全/온전함을 얻음)하였으니,

마침내 나 홀로 지반(池畔/못가)의 심초(深草) 중(中)에 닉(匿)하였고,

부(婦)는 팽아(彭兒)와 더불어 그 상(上)에 과와(裹臥/싸서 누움)하였는데,

수졸(數卒)의 지(至)가 있어, 겁(劫)하여 출자(出者)가 재차(再) 모두 소헌뢰(少獻賂)하면 거(去)하였다.

이어 한졸(狠卒/사나운 병졸) 하나가 왔는데, 서두(鼠頭/쥐 머리)에 응안(鷹眼/매의 눈)하였는데,

그 상(狀)이 심악(甚惡)하였고, 내 부(婦)를 겁(劫)하고자 하였다.

부(婦)가 언건(偃蹇/굼뜨게 쓰러짐)하여 전언(前語)으로써 고지(告之)하였는데, 불청(不聽)하였고,

핍(逼)하여 입기(立起)하게 하였으나, 부(婦)가 지상(地上)에서 선전(旋轉/빙빙 돌려 굴러 감)하니,

사부긍기(死不肯起/죽은 듯 일어나지 않음)하였고, 졸(卒)이 도배(刀背/칼등)를 거(舉)하여 난타(亂打)하니, 

혈천의상(血濺衣裳/피가 옷에 흩뿌려짐)하였는데, 표리(表裡/겉과 속)가 지투(漬透/새어서 젖음)하였다.

이에 앞서 부(婦)가 나에게 계(戒)하여 말하길

「혹시 불행(不幸)을 우(遇)하면, 나는 필사(必死)할 것인데, 부부(夫婦)가 이런 연고(故)로 걸애(乞哀/동정을 애걸함)하여 

  당신마저 연루(累)함은 불가(不可)하오.

  아사(我死)는 즉(則) 자목(子目/당신의 눈)에서 필사(必死)할 것이니, 비자(俾子/당신을 흘겨봄)하여 

  역(亦)시 필사(心死)하리다!」

이에 나는 초중(草中)에 원타(遠躲/멀리 숨음)하였고, 불여자(不與者)로 삼은 것 같았는데,

역시(亦) 부(婦)가 장차(將) 사(死)하리라 위(謂)하였는데, 졸(卒)이 거듭 불사(不捨/내버려 두지 않음)하였고,

누차(屢) 부(婦)의 발(髮)을 탁(擢/뽑아 올림)하여 두루 비(臂/팔뚝)에 수잡(數匝/수차례 두름)하였고,

노질(怒叱/노하며 욕함)하고 횡예(橫曳/곁에서 끌어당김)하여 거(去)하였다.

전맥(田陌/밭길)을 경유(由)하여 심항(深巷/교외의 우거진 동네)의 일전지(一箭地/화살 하나가 닿을 거리)에 지(至)하였는데,

환곡(環曲/구불구불 돌아서 감)하여 이로써 대가(大街)에 출(出)하였는데,

수무(數武/몇 발자국)를 행(行)하면 필(必)히 수하(數下)를 격(擊)하였다.

갑자기 중기(眾騎)의 지(至)를 우(遇)하였는데, 그 중(中) 1인(人)이 졸(卒)과 더불어 한 두 마디 만어(滿語)하자,

마침내 내 부(婦)를 사(舍/버림)하고 거(去)하였다.

비로소 포복(匍匐/배를 땅에 대고 김)을 득(得)하여 반(返/되돌아옴)하였고, 일번(一番/한 차례)을 대곡(大哭)하였는데, 

신(身)이 완부(完膚/피부에 상처가 없음)하지 않았다!

홀연히(忽) 또 열화(烈火/맹렬하게 타는 불)가 사기(四起)하였고, 하가(何家)의 분(墳/무덤) 전후(前後)로 

초방(草房)이 많았는데, 연(燃)하니 즉(則) 입각(立刻/곧장)하여 성신(成燼/잿더미가 됨)하였다.

그 촌양(寸壤/좁은 논밭)의 극지(隙地/빈 터)로 한 둘 누망(漏網/달아나 잡히지 않음)한 자(者)도 있었는데,

화(火)가 일핍(一逼)하니, 사척(四齣/사방에서 나타남)하여 분찬(奔竄/바쁘게 도망침)하지 않음이 없었고,

출(出)하면 즉(則) 우해(遇害)하니, 백(百)에 면일(免一)도 없었다.

그 폐호(閉戶)하여 자분(自焚)한 자(者)는 수구(數口)로부터 수백구(數百口)에 지(至)하였는데,

1 실(室)의 중(中)에, 가령 적골(積骨/쌓인 뼈)의 다소(多少)를 부지(不知)할 뿐이로다!

대략(大約) 차제(此際)에 가피(可避)를 무처(無處)하였고, 역시(亦) 피(避)를 불능(不能)하였고,

피(避)하면 즉(則) 혹(或) 일범지(一犯之)하면, 무금(無金)은 사(死)요, 유금(有金) 역시(亦) 사(死)였다.

오직 도방(道旁/길 옆)에 출로(出露/밖으로 드러남)하여, 혹(或) 시해(屍骸)와 더불어 잡처(雜處)한다면,

생사(生死)가 반(反/뒤집어짐)할지 가(可)히 지(知)하지 못하였다.

나는 이로 인(因)하여 부자(婦子)와 함께 병왕(並往) 총후(冢後)에 와(臥/엎드림)하였고,

니수도족(泥首塗足/진흙으로 머리에서 발까지 칠함)하였는데, 거의 인형(人形)이 없었다.

이때 화세(火勢)가 유치(愈熾/더욱 성함)하였는데, 묘목(墓木/무덤 근처의 나무)이 모두 분(焚)하였고,

광(光)이 전작(電灼/번개가 작렬함)과 같았으며, 성(聲)은 산최(山摧/산이 무너짐)와 비풍(悲風/쓸쓸하고 슬픈 바람)의 

노호(怒號/성내어 부르짖음)와 같으니, 사람으로 하여금 생금(生噤/입을 다물게 만듦)하게 하였고, 

적일(赤日/붉은 해)은 참담(慘淡/어둡고 쓸쓸함)하여 무광(無光)하게 되었다.

목전(目前)이 무수(無數)한 야차(夜叉)와 귀모(鬼母)가 천백(千百) 지옥인(地獄人)을 구살(驅殺/몰아내 죽임)하고 

치축(馳逐/달려가서 쫓음)하는 것을 보는 것과 같았다.

경계(驚悸/놀라서 두근거림)한 나머지, 이때 혼현(昏眩/머리가 어질어질함)을 작(作)하였고,

대개(蓋) 이미(已) 이 몸이 인세(人世) 간(間)에 재(在)하는지 부지(不知)할 뿐이었다.

갑자기 등맹(騰猛/세차게 뛰어옴)하는 족성(足聲)을 문(聞)하였는데, 참호(慘呼/참혹한 부르짖음)가 

진심(震心/마음을 진동함)하였고, 장반(牆畔/밭두렁)을 회고(回顧/뒤돌아봄)하니, 즉(則) 나의 백형(伯兄)이 

다시 피획(被獲)하였고, 요견(遙見)하니 형(兄)이 졸(卒)과 함께 상지(相持/서로 잡음)하였고, 

형(兄)의 역(力)이 대(大)하니, 별(撇/때림)하고는 득탈(得脫)하였고, 

졸(卒)이 주축(走逐)하여 전항(田巷/동네 밭)으로 출(出)하였는데, 반향(半晌/한참 동안) 부지(不至)하였다.

나의 마음이 바야흐로 요요(搖搖/마음이 매우 불안함)하였는데, 이내 홀연히(忽) 주(走)하는 1인(人)이 래전(來前)하였는데,

적체(赤體/알몸)에 산발(散髮)하였는데, 시지(視之)하니 즉(則) 백형(伯兄)이었다.

이어 백형(伯兄)을 추(追)하는 졸(卒)은 즉(即) 전(前)에 나의 부(婦)를 겁(劫)하였다가 중도(中途)에 사거(捨去)한 자(者)였다.

백형(伯兄)이 졸(卒)의 소핍(所逼)으로 인(因)하여 부득이(不得已) 나로 향(向)하여 색금(索金)하며 구명(救命)하였는데,

나는 겨우 일정(一錠/한 덩이)을 존(存)하였는데, 출(出)하여 이로써 졸(卒)에게 헌(獻)하였는데,

그러나 졸(卒)은 노(怒)를 그치지 않고, 거도(舉刀)하여 형(兄)을 격(擊)하였고,

형(兄)은 지상(地上)에 전전(輾轉/누워서 이리저리 뒤척거림)하였는데 사혈(沙血/모래와 피)이 상지(相漬/서로 젖음)하여

주격(註激/심하게 기록함)하자니 백보(百步)였다.

팽아(彭兒)가 졸(卒)의 의(衣)를 랍(拉/끎)하여 체읍(涕泣/눈물을 흘림)하고 구면(求免)하였는데,

[이때 나이 5세였다] 졸(卒)이 아의(兒衣)로써 도혈(刀血)을 식(拭/닦음)하고는 재격(再擊)하니,

이에 형(兄)이 장차(將) 사(死)할 뿐이었다.

선(旋)하며 나의 발(髮)을 랍(拉)하며 색금(索金)하였는데, 도배(刀背)로 난격(亂擊)이 부지(不止)하였고,

나는 금진(金盡)을 소(訴)하여 말하길

「필(必)히 욕금(欲金)하면 즉(即) 감사(甘死)하며, 타물(他物)은 가(可)하리다.」

졸(卒)이 나의 발(髮)을 견(牽/끎)하여 홍댁(洪宅)에 지(至)하였다.

내 부인(婦)의 의식(衣飾/옷과 장신구)은 양(兩) 옹중(瓮中/항아리 속)에 치(置)하여,

계하(階下/섬돌 아래)에 도치(倒置/뒤집어 둠)하였는데, 진발(盡發)하여 이로써 그 취(取)를 공(供/바침)하였는데,

무릇 금주(金珠)의 유(類)는 취(取)하지 않는 것이 없었고, 의복(衣服)은 호자(好者)를 택(擇)하여 취(取)하였다.

이윽고 필(畢)하자, 아(兒)의 항하(項下/목 아래)에 은쇄(銀鎖/은 목걸이)가 있음을 시(視)하더니,

문득 도할(刀割)하고 거(去)하였는데, 거시(去時) 고여(顧予)하여 말하길

「나는 너를 불살(不殺)하는데, 응당 너를 죽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세성지설(洗城之說)이 이미(已) 확(確)하였음을 지(知)하니, 요(料)하건대 필사(必死)로다!


【4월 29일】

다음날은 즉 29일이었다.

25일부터 일어나 이에 이미 5일에 이르렀으니 혹 가히 요행을 바라고 사면을 얻을 수 있을까 하였는데

곧 분분히 세성지설(성민을 도륙한다는 소문)을 들으니 성중의 남은 백성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성에 줄을 매달아 나가는 자가 태반이었고 오래된 해자가 있었는데 막혀 물이 흐르지 않았는데

이에 이르러 평탄한 길과 같으니 낮에는 엎드려 있다가 밤에 움직였는데 이로 인하여 그 칼날에 도리어 재앙을 당하였다.

성 밖으로 도망쳐 나간 사람들이 성안의 재물을 탐하여 문득 짝을 이뤄 해자에 야밤에 들어가 심문하여

그 금은을 뒤지니 사람마다 감히 누구냐고 물어보지 못하였다.

우리들이 생각하기로 이미 성문을 넘어가기는 험하여 도망칠 수 없다 하였고 큰형 또한 나 때문에 차마 혼자 가지를 못하였다.

이어 동 틀 무렵에 이르자 그 생각이 마침내 그치었다.

원래 숨은 곳에는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내 부인은 잉태하여 이런 연고로 누누이 온전하게 되었으니

마침내 나 홀로 못가의 깊은 풀 속에 숨었고 부인은 팽아와 함께 그 위에 껴앉고 누웠는데 

몇몇 병졸이 이르러 위협하면 (숨어 있다) 나오는 자들이 재차 모두 뇌물을 조금 바치면 가버렸다.

이어 사나운 병졸 하나가 왔는데 쥐머리에 매의 눈을 하고 있어 그 형상이 심히 악하였는데 내 부인을 겁박하고자 하였다.

부인이 쓰러지며 앞의 말대로 고하였는데도 들어주지 않았고 핍박하여 일어서게 하였는데

부인이 땅 위에서 빙빙 돌며 굴러가 죽은 듯 일어나지 않았고 병졸이 칼등을 들어 난타하니

피가 옷에 흩뿌려졌는데 겉옷과 속옷이 모두 젖었다.

이에 앞서 부인이 나에게 타일러 말하길

「혹시 불행을 만나게 되면 나는 반드시 죽을 것인데, 부부가 이런 연고로 동정을 애걸하여 당신마저 연루되는 것은 불가하오!

  나의 죽음은 곧 당신의 눈앞에서 반드시 죽을 것이니 당신을 흘겨보며 또한 반드시 죽으리다!」

이에 나는 풀 속에서 멀리 숨어 상관없는 자처럼 있으면서 또한 부인이 장차 죽으리라 일컬었는데

병졸이 거듭 내버려 두지 않았고 누차 부인의 머리털을 잡아 올려 두루 팔뚝에 수차례 두르더니 화를 내며 욕하고 

곁에서 끌어당겨 가버렸다.

밭길을 경유하여 화살 하나 날아갈 거리인 수풀이 우거진 동네를 구불구불 돌아 나가 이로써 큰 거리로 나갔는데

몇 발자국을 걸으면 반드시 몇 차례씩 때려댔다.

갑자기 기병 무리가 이르러 조우하였는데 그중 1인이 병졸과 더불어 만주어로 한 두 마디 하자 

마침내 내 부인을 버리고 가버렸다.

비로소 포복하여 기어서 되돌아왔고 한 차례 크게 곡하였는데 몸에 성치 않은 데가 없었다.

홀연히 또 맹렬하게 타는 불이 사방에서 일어났고 하씨 가문 무덤 앞뒤로 초가집들이 많았는데 불이 붙으면 

곧장 잿더미가 되었다.

그 좁은 논밭의 빈 터로 한 두 명은 빠져나가기도 하였으나 불이 가까이 이르자 사방에서 나타나 급히 도망치지 않는 자들이 

없었고 나오면 즉시 해를 당하니 백에 일도 면하지 못하였다.

그 집 문을 닫고 스스로 불에 탄 자들은 수명에서 수백 명에 이르렀는데 한 집 속에 가령 쌓인 뼈가 많은지 적은지 알 수 없을 뿐이었다.

대략 이 즈음에 가히 피할 곳도 없었고, 또한 피하는 것 자체도 불가능하였으며,

혹 피하다가 만나게 되면 금이 없으면 죽고, 금이 있어도 또한 죽었다.

오직 길 옆으로 나와 혹 시체들과 함께 섞여 있으면 생사가 뒤집어질지 가히 알지 못하였다.

나는 이로 인하여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함께 무덤 뒤에 엎드렸고 진흙으로 머리에서 발까지 칠하였는데, 

거의 사람의 형상이 없었다.

이때 불의 기세가 더욱 성하여 무덤 근처의 나무가 모두 불탔는데

빛은 번개가 작렬하는 것과 같았으며, 소리는 산이 무너지고 슬픈 바람이 성내어 부르짖는 것과 같으니 

사람으로 하여금 입을 다물게 만들었고 붉은 해는 참담하여 빛이 없게 되었다.

목전에 무수한 야차와 귀모가 천백 지옥 사람들을 몰아내 죽이고 달려가서 쫓는 것을 보는 것과 같았다.

놀라 두근거리는 나머지 이때 머리가 어질어질하게 만드니 대개 이미 이 몸이 인간 세상에 있는 것인지 알지 못할 뿐이었다.

갑자기 세차게 뛰어오는 발소리를 들었는데 참혹한 부르짖음이 마음을 진동하였고

밭두렁을 뒤돌아보니 즉 나의 큰형이 다시 사로잡혀 있었는데 멀리서 바라보니

형이 병졸과 더불어 서로 잡고 있었고 형의 힘이 대단하여 때리고는 탈출하였는데

병졸이 동네 밭으로 나아가 달려서 쫓아갔는데 한참 동안 이르지 않았다.

나의 마음이 바야흐로 매우 불안하였는데 이내 홀연히 도망가는 한 사람이 앞으로 왔는데 알몸에 산발하였으며 

바라보니 즉 큰형이었다.

이어 큰형을 추격하는 병졸은 즉 전에 나의 부인을 위협하였다가 중도에 버리고 간 자였다.

큰형이 병졸의 핍박으로 인하여 부득이 나로 향하여 금을 찾으며 구명하였는데

나는 겨우 한 덩이를 가지고 있었으나 꺼내어 이로써 병졸에게 바쳤다.

그러나 병졸은 화를 그치지 않았고 칼을 들어 형을 치니 형은 땅 위에 누워 이리저리 기었는데 피가 모래를 젖혔는데 

심하게 표현하자면 백보에 이르렀다.

팽아가 병졸의 옷을 끌고 눈물을 흘리며 살려달라 청하였는데 [이때 나이 5세였다],

병졸이 아이의 옷에 칼의 피를 닦더니 다시 쳤고 이에 형은 장차 죽을 뿐이었다.

돌아와 나의 머리털을 끌며 금을 수색하였는데 칼등으로 난타하는 것을 그치지 않았다.

나는 금이 떨어졌음을 호소하며 말하길

「필히 금을 원한다면 즉 죽음을 감내할 뿐이며 다른 물건은 가하리다!」

병졸이 나의 머리털을 끌고 홍씨 댁에 이르렀다.

내 부인의 옷과 장신구는 두 개의 항아리 속에 두어 섬돌 아래에 뒤집어 뒀었는데 모두 꺼내어 이로써 바쳤는데

무릇 금과 진주 종류는 취하지 않은 것이 없었고 의복은 좋은 것을 택하여 취하였다.

이윽고 마치자 아이의 목 아래에 은 목걸이가 있는 것을 보더니

문득 칼로 끊어 가버렸는데 갈 때 나를 돌아보며 말하길

「나는 너를 죽이지 않을 것이나, 응당 너를 죽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세성지설(성을 도륙한다는 소문)이 이미 확정되었음을 알게 되니 헤아리건대 필히 죽을 것이로다!


요약.

1645년 4월 29일 양주성 함락 5일차.

양수초는 살 수 있다는 희망과 성내에 도륙령이 떨어졌다는 흉문도 같이 듣게 된다.

밤새 큰형과 함께 성을 탈출하자는 의논도 오갔으나 성밖에 한족 악인들이 탈출하는 한족을 강탈한다는 소문도 듣는다.

날이 밝자 왕수초는 형과 헤어져 처자를 데리고 연못가 풀 속에 숨는다.

그러나 결국 한 병졸에게 부인이 발각되어 끌려가는데 왕수초는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병졸은 부인을 끌고 가다 한 기마병들을 만나고 만주어로 짧게 대화한 후에 부인을 버리고 가버렸다.

이에 부인은 기어서 왕수초에게 돌아온다.

한편 왕수초가 숨은 인근에서 청군들이 초가집을 불태우고 도망쳐 나오는 한족들을 모조리 죽이고 있었다.

이때 왕수초의 큰형이 병졸과 다투더니 급히 달아났는데 그 병졸은 아까 부인을 끌고 갔던 병졸이었다.

결국 큰형이 왕수초 있는 곳까지 도망쳐 와 살려 달라 말하였고 왕수초는 가진 돈을 모조리 병사에게 바쳤다.

그러나 성이 안찬 병사는 큰형을 베어버렸고 큰형은 피를 흘리며 모래밭을 기었다.

왕수초는 밤에 숨겨놓았던 재물을 바쳤고 병사는 죽이지 않겠다 말하였으나

왕수초도 다른 병사에게 필히 죽을 것이라 말하고 가버린다.

이 병사는 중국말과 만주어를 할 줄 아는 것으로 보아 요동 출신 한족 병사로 짐작된다.


입관 직후 청나라 팔기군내 한족 군인 현황


-11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