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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대학살 14부-함락6일차 봉도령(封刀令)! 얼레빗과 참빗 명군의 약탈!

 입관 1년 후 1645년 4월 청군이 10일간 80만 명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진 양주십일기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1부-도르곤<사가법 선생! 같이 갑시다!>

2부-도도<반항하는 양주성을 도륙 냈나이다!>

3부-함락 하루 전...잔치를 벌이다

4부-함락1일차(1) 낙성임박! 이중인격자 사가법!

5부-함락1일차(2) 아내에게 자살을 권유하다!

6부-함락1일차(3) 살육의 밤 공포에 떨다!

7부-함락2일차(1) 젖먹이들이 길가에 간과 뇌를 흩뿌리다!

8부-함락2일차(2) 고려여자들은 절개를 지켰는데, 너희 중국인은 수치를 모르는가?

9부-함락2일차(3) 구사일생 처자와 상봉하다!

10부-함락3일차 학살에 울부짖는 아이들과 울지 않는 젖먹이

11부-함락4일차 청 한족 장군이 한족들을 살리다!

12부-함락5일차(1) 흉폭한 한족 팔기군 병사!

13부-함락5일차(2) 집단 강간당하는 부녀자들


원문 출처 : https://zh.wikisource.org/zh-hant/%E6%8F%9A%E5%B7%9E%E5%8D%81%E6%97%A5%E8%A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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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십일기(揚州十日記) 中

【五月初一】

次日為五月朔日,勢雖稍減,然亦未嘗不殺人,未嘗不掠取;

而窮僻處或少安;

富家大室方且搜括無餘,子女由六七歲至十餘歲搶掠無遺種。

是日,興平兵復入揚城,而寸絲半粟,盡入虎口,前梳後篦,良有以也。

【5월 1일

차일(次日)은 5월(月)의 삭일(朔日)이었는데, 세(勢)가 비록(雖) 초감(稍減)하였으나,

그러나 역시(亦) 살인(殺人)이 없지는 않았고, 약취(掠取)가 없지도 않았는데,

이에 궁벽처(窮僻處)는 혹(或) 소안(少安)하였고, 부가(富家)와 대실(大室)은 바야흐로 또한 

수괄(搜括/착취)하여 무여(無餘)하였고, 자녀(子女)는 6~7세(歲)로부터 10세(歲)에 이르기까지 

창략(搶掠/빼앗고 약탈함)하여 유종(遺種/씨를 남김)하지 않았다.

이날에, 흥평(興平)의 병(兵)이 양성(揚城)에 복입(復入)하였고, 

이에 촌사(寸絲/짧은 실)와 반속(半粟/좁쌀 반톨)도 호구(虎口)에 진입(盡入)하니, 

전소(前梳/앞은 얼레빗)와 후비(後篦/뒤는 참빗)라 함은 양유이야(良有以也/참으로 그 이유가 있음)로다.


【5월 1일】

다음날은 5월 초하루였는데 기세가 비록 점차 감소하였으나 그러나 역시 살인이 없지는 않았고, 노략질이 없지도 않았으며,

이에 궁벽한 곳이나 혹 조금 안전하였고 부잣집과 큰 집은 바야흐로 또한 착취하여 남은 것이 없었고

자녀는 6~7세로부터 10세에 이르기까지 빼앗겨 씨도 남지 않았다.

이날에, 흥평백(고걸)의 병력이 양주성에 다시 들어왔고 이에 짧은 실이나 좁쌀 반톨 마저 호랑이 입에 모두 들어가니

앞은 얼레빗이고 뒤는 참빗이라 함은 참으로 그 이유가 있음이로다.


요약.

1645년 5월 1일 양주성 함락 6일차.

전날 청 귀족의 말처럼 도도의 칼을 봉하라는 봉도령이 내려진 것처럼 살인의 기세가 점차 감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날 도주했던 흥평백 고걸의 남명군이 양주성으로 들어와 약탈을 자행한다.

왕수초는 얼레빗과 참빗을 비유하며 한탄한다.


-15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