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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대학살 16부-함락8일차 쌀을 받아가라! 아비규환에서 살아난 원귀꼴

 입관 1년 후 1645년 4월 청군이 10일간 80만 명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진 양주십일기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1부-도르곤<사가법 선생! 같이 갑시다!>

2부-도도<반항하는 양주성을 도륙 냈나이다!>

3부-함락 하루 전...잔치를 벌이다

4부-함락1일차(1) 낙성임박! 이중인격자 사가법!

5부-함락1일차(2) 아내에게 자살을 권유하다!

6부-함락1일차(3) 살육의 밤 공포에 떨다!

7부-함락2일차(1) 젖먹이들이 길가에 간과 뇌를 흩뿌리다!

8부-함락2일차(2) 고려여자들은 절개를 지켰는데, 너희 중국인은 수치를 모르는가?

9부-함락2일차(3) 구사일생 처자와 상봉하다!

10부-함락3일차 학살에 울부짖는 아이들과 울지 않는 젖먹이

11부-함락4일차 청 한족 장군이 한족들을 살리다!

12부-함락5일차(1) 흉폭한 한족 팔기군 병사!

13부-함락5일차(2) 집단 강간당하는 부녀자들

14부-함락6일차 봉도령(封刀令)! 얼레빗과 참빗 명군의 약탈!

15부-함락7일차 80만 시신을 불태우다!


원문 출처 : https://zh.wikisource.org/zh-hant/%E6%8F%9A%E5%B7%9E%E5%8D%81%E6%97%A5%E8%A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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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십일기(揚州十日記) 中

【五月初三】

初三日,出示放賑,偕洪嫗至缺口關領米;

米即督鎮所儲軍糧,如丘陵,數千石轉瞬一空。

其往來負戴者俱焦頭爛額,斷臂折脛,刀痕遍體,血漬成塊,滿面如燭淚成行,碎爛鶉衣,腥穢觸鼻,

人扶一杖,挾一蒲袋,正如神廟中竄獄冤鬼;

稍可觀者猶是卑田院乞兒也。

奪米之際,雖至親知交不顧,強者往而復返,弱者竟日不得升斗。

【5월 3일

초(初) 3일에, 방진(放賑/방을 걸어 구휼함)을 출시(出示/포고를 내붙임)하였고,

홍구(洪嫗)와 함께 결구관(缺口關)에 지(至)하여 영미(領米/쌀을 받음)하였다.

미(米)는 즉(即) 독진(督鎮/사가법)이 소저(所儲)한 군량(軍糧)으로, 구릉(丘陵/언덕)과 같았고,

수천석(數千石)이 전순(轉瞬/순식간)에 일공(一空)하였다.

그 왕래(往來)하여 부대(負戴/짐을 등에 지고 머리에 임)한 자(者)는 모두 초두(焦頭/머리를 그을림)하고 

난액(爛額/이마가 문드러짐)하였고, 단비(斷臂/팔이 잘림)하고 절경(折脛/정강이뼈가 꺾임)하였으며,

도흔(刀痕/칼에 맞은 흔적)이 편체(遍體/몸에 두루 있음)하였고, 혈지(血漬/피에 젖음)하여 성괴(成塊/덩어리를 이룸)하였으며,

만면(滿面/온 얼굴)이 촉루(燭淚/촛농)가 성행(成行)한 것과 같았고, 

쇄란순의(碎爛鶉衣/옷이 갈갈이 찢어져 누더기가 됨)하고 성예촉비(腥穢觸鼻/비리고 더러운 냄새가 코를 찌름)하였으며,

사람마다 1 장(杖/지팡이)을 부(扶/붙듦)하고, 1 포대(蒲袋/창포 자루)를 협(挾/낌)하는데,

마치 신묘(神廟/신주를 모신 사당) 중(中) 찬옥(竄獄/지옥에서 달아남)한 원귀(冤鬼/원통한 귀신)와 같았다.

자못 가관(可觀)한 자(者)도 오히려 이에 비전원(卑田院/빈궁한 백성을 구제하여 기르는 곳)의 걸아(乞兒/거지 아이)였다.

탈미(奪米/쌀을 빼앗음)할 제(際/즈음)에는 비록 지친(至親)이나 지교(知交)도 불고(不顧)하였고,

강자(強者)는 왕이복반(往而復返/갔다가 다시 돌아옴)하였고, 

약자(弱者)는 경일(竟日/온종일) 승두(升斗/되와 말)를 부득(不得)하였다.


【5월 3일】

3일에 방을 걸어 구휼한다 포고를 내붙였고 홍 할머니와 함께 결구관에 이르러 쌀을 받았다.

쌀은 곧 독진(사가법)이 저축한 군량으로 언덕과 같았는데 수천 석이 순식간에 하나도 남지 않았다.

그 왕래하며 짐을 등에 지고 머리에 인 자들은 모두 머리를 그을리고 이마가 문드러졌으며

팔이 잘리고 정강이가 부러졌으며 칼에 맞은 흔적이 몸에 두루 있었고, 피에 젖어 덩어리를 이루었고

온 얼굴이 촛농이 성행한 것과 같았고 옷은 갈갈이 찢어져 누더기가 되었으며 비리고 더러운 냄새가 코를 찔렀고

사람마다 지팡이 하나를 붙들고 포대 1개를 끼었는데 마치 신묘 속 지옥에서 달아난 원귀와 같았다.

자못 볼만 한자도 오히려 비전원(빈궁한 백성을 구제하여 기르는 곳)의 거지 아이와 같았다.

쌀을 빼앗을 즈음에는 비록 지친이나 친구도 돌아보지 않았으며

강자는 갔다가 다시 돌아왔고 약자는 온종일 되와 말도 얻지 못하였다.


요약.

1645년 5월 3일 양주성 함락 8일차.

청군은 구휼하겠다는 포고문을 게시한다.

이에 왕수초도 결구관에서 쌀을 받아갔다.

당시 사가법이 비축한 군량이 수천석이었는데, 순식간에 모두 동이 났다.

쌀을 받아가는 자들 중에 성한 사람이 드물었고 온몸에 상처와 핏자국이 선명하였으며 더럽고 비린 냄새가 나는 등 

그야말로 귀신과 같았다.

쌀을 받을 때도 서로 가져가기 위해 다퉜으며 약자는 하나도 얻지 못하였다.


-17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