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 카페 메로나님께서 요청하신 만주어 국서를 번역해 보았습니다.
https://cafe.naver.com/booheong/191271
-배경 : 1706년, 1708년 강희제가 로마 교황청에 포교 관련 사신을 보냄
1. 1706년 사신 : 선교사 안토니오 드 바로스 신부, 앙투안 드 보볼리어
→ 포르투갈 해안에서 선박 전복사고로 사망
2. 1708년 사신 : 호세 라몬 아르소, 예수회 선교사 주세페 프로바나
-1716년 강희제는 앞서 보낸 사신단이 돌아오지 않자 다시 무영전 관리들의 명의로
목판에 인쇄하고 광동 순무의 인장을 찍어 똑같은 편지 다수를 서양인과 러시아인에게 주어 로마 교황청에 전달하게 함
-글 : 만주문, 한문, 라틴문 합본 (강희제 감수)
<그림을 크게 보실 분은 그림을 클릭하시고 원문보기를 누르세요>
u ing diyan i jergi ba i bithe weilere ba i hafan iduri. wang doo hvwa. joocang sei bithe.
우 잉 댠 이 저르기 바 이 빝허 워이러러 바 이 하판 이두리. 왕 도오 후와. 조오창 서이 빝허.
무 영 전 의 등 곳 의 글 일할 곳 의 관리 이두리. 왕 도 화. 조창 등의 글.
si yang ci jihe urse de bireme wasiha.
시 양 치 지허 우르서 더 비러머 와시하.
서 양 으로부터 온 사람들 에 널리 내려준다.
be hese be gingguleme dahafi. elhe taifin i dehi sunjaci aniya si yang ni niyalma lung an guwe. be hiyan xi sebe.
버 허서 버 깅우러머 다하피. 얼허 타이핀 이 더히 순자치 아냐 시 양 니 냘마 룽 안 궈. 버 햔 쓰 서버.
우리들 조서 를 공경하게 따르고. 강 희 의 40 5년째 해 서 양 의 사람 용 안 국. 박 현 사 등을.
dehi nadaci aniya ineku si yang ni niyalma ai zo xe. lu zo xe sebe. hese i takvrafi unggihe bihe.
더히 나다치 아냐 이너쿠 시 양 니 냘마 아이 조 셔. 루 조 셔 서버. 허서 이 타쿠라피 웅이허 비허.
40 7번째 해 같은 서 양 의 사람 애 약 슬, 륙 약 슬 등을. 조서 로 파견하고 보냄 이었다.
ere utala aniya umai mejige akv bime. yargiyan taxan be sarakv. mejige balai jimbi.
어러 우타라 아냐 우마이 머지거 아쿠 비머. 야르갼 타샨 버 사르쿠. 머지거 바라이 짐비.
이 많은 해 전혀 소식 없게 되며. 진실 거짓 을 모르고. 소식 함부로 온다.
uttu ofi. oros urse de geli jasiha.
웉투 오피. 오로스 우르서 더 거리 자시하.
이와같이 되어서. 러시아 사람들 에 또한 편지보낸다.
maka isinahao
마카 이시나하오?
혹시 이르렀느냐?
damu meni takvraha niyalma amasi isinjire. baita umesi getuken oci. teni akdara dabala.
다무 머니 타쿠라하 냘마 아마시 이신지러. 바이타 우머시 거투컨 오치. 터니 앜다라 다바라!
다만 우리 파견한 사람 뒤로 이르러오고. 일 몹시 분명하게 되면. 비로소 믿을 뿐!
meni takvraha niyalma amasi jiderakv. yargiyan temgetu akv oci.
머니 타쿠라하 냘마 아마시 지더라쿠. 야르갼 텀거투 아쿠 오치.
우리 파견한 사람 뒤로 오지않고. 진실한 증빙 없게 되니.
ai hacin i bithe jihe seme akdaci ojorakv.
아이 하친 이 빝허 지허! 서머 앜다치 오조라쿠.
무슨 항목 의 글 온다! 하며 믿으면 되지않는다.
uttu ofi. geli hafunarakv ojorahv seme.
웉투 오피. 거리 하푸나라쿠 오조라후? 서머.
이와같이 되고. 또한 통하지않게 되지않겠느냐? 하며.
bithe arafi. si yang ni bithe kamcibufi undehen de folobufi. jihe ele urse de labdu bufi.
빝허 아라피. 시 양 니 빝허 캄치부피 운더헌 더 포로부피. 지허 어러 우르서 더 랍두 부피.
글 만들고. 서 양 의 글 겸하게하고 판자 에 새기게하고. 온 모든 사람들 에 많이 주고.
guwangdung ni siyvn fu i doron gidafi. fempilehekv unggihe.
구왕둥 니 쉰 푸 이 도론 기다피. 텀피러허쿠 웅이허.
광동 의 순 무 의 인장 찍고. 봉인하지않고 보낸다.
elhe taifin i susai sunjaci aniya uyun biyai juwan nadan.
얼허 타이핀 이 수사이 순자치 아냐 우윤 뱌이 주완 나단.
강 희 의 50 5번째 해 9 월의 10 7.
*bithe weilere ba[빝허 워이러러 바] : 직역 [글 일할 곳], 관명 수서처(修書處)
*oros[오로스] : 러시아, 악라사(鄂羅斯).
*jasimbi[자심비] : 편지 보내다, 물건을 보내다.
*maka[마카] : 혹시, 글쎄.
*temgetu[텀거투] : 기호, 증거, 증명서, 증서, 징조.
*fempilembi[펌피럼비] : 봉하다, 봉인하다.
*lung an guwe[룽 안 궈] : 신부 안토니오 데 바로스[Fr.António de Barros], 용안국(龍安國), Long Anguo
*be hiyan xi[버 햔 쓰] : 신부 앙투안 드 보볼리어[Fr. Antoine de Beauvollier], 박현사(薄賢士), Bo Xianshi
*ai zo xe[아이 조 셔] : 신부 주세페 프로바나[Fr. Giuseppe Provana], 애약슬(艾若瑟), Ai Ruose
*lu zo xe[루 죠 셔]
: 신부 호세 라이문도 데 아르소[Fr. José Raimundo de Arxo], 륙약슬(陸若瑟), Lu Ruose
*elhe taifin[얼어 타이핀] : 직역 [편안한 태평], 청 4대 황제 성조의 연호 강희(康熙).
무영전의 등처의 수서처의 관리 이두리, 왕도화, 조창 등의 글을 서양으로부터 온 사람들에 널리 내려준다.
우리들 조서를 공경하게 따르고 강희의 45년째 해(1706년)에 서양의 사람 용안국과 박현사 등을
47번째 해(1708년) 같은 서양의 사람 애약슬과 륙약슬 등을 조서로 파견하고 보냈었다.
이 많은 해 전혀 소식 없게 되며 진실과 거짓을 모르고 소식 함부로 왔다.
이와 같이 되어서 러시아 사람들에 또한 편지 보낸다.
<혹시 이르렀느냐?>
다만 우리 파견한 사람 뒤로 이르러오고 일이 몹시 분명하게 되면 비로소 믿을 뿐!
우리가 파견한 사람 뒤로 오지 않고 진실 증명서 없게 되니 무슨 항목의 글 온다! 하여도 믿지 않는다.
이와 같이 되고 또한
<통하지 않게 되지 않겠느냐?> 하며 글 만들고 서양의 글을 겸하게 하고 판자에 새기게 하고
(서양에서 온) 온 모든 사람들에 (편지를) 많이 주고 광동의 순무의 인장 찍고 봉인하지 않고 보낸다.
강희의 55번째 해(1716년) 9월 17일
武英殿等處監修書官伊都立王道化趙昌等
字寄與自西洋來的衆人我等僅遵
㫖於康熙四十五年已曾差西洋人龍安國薄賢
士四十七年差西洋人艾若瑟陸若瑟奉
㫖往西洋去了至今數年不但沒有信來時以難
辨真假又有亂來之信因此與鄂羅斯的人
又帶信去想是到去了必竟我等差去人回
時事情都明白之後方可信得若是我等差
去之人不回無真憑據雖有甚麼書信總信
不得因此唯恐書信不通寫此字兼上西洋
字刊刺用廣東巡撫院印書不對緘凡來的
衆西洋人多發與帶去
康熙五十五年九月十七日
무영전 등처 감수서관 이도립, 왕도화, 조창 등이 서양으로부터 온 무리들에게 글을 부친다.
우리들은 강희 45년(1706년)에 삼가 조서를 받들어 이미 일찍이 서양인 안토니오 데 바로스와 앙투안 드 보볼리어를 보냈고,
47년(1708년)에는 서양인 주세페 프로바나와 호세 라이문도 데 아르소를 보내 조서를 받들고 서양에 가게 하였다.
지금 수년이 지났는데도 뿐만 아니라 오는 서신 또한 있지 않았다.
하여 지금은 이로써 진실과 거짓을 판별하기는 어렵다.
또한 어지럽게 오는 서신이 있으니 이로 인하여 러시아인과 함께 서신을 휴대하고 가게 하였다.
생각건대 도착하였을 것이다.
필경 우리들이 보낸 사람들이 돌아올 때 대개 사정이 명백하게 된 후에 바야흐로 믿음을 얻게 될 것이 옳을 것이노라.
만약 이 우리가 보낸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는 다면 진실한 증빙이 없는 것이다.
오직 많거나 적은 서신이라도 있어야 모두 믿으리라.
부득이 이로 인하여 다만 서신이 통하지 않을까 두려워 이 글자를 베끼고 겸하여 위에 서양문자를 새겨
광동 순무원의 인장을 서신에 사용하였고 밀봉하지는 않았다.
무릇 가는 무리와 서양인들에게 많이 발행하여 휴대하고 가게 하였다.
강희 55년(1716년) 9월 17일
-끝-
p.s) 라틴어 부분은 문외한이라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능력자 계시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