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관 1년 후 1645년 4월 청군이 10일간 80만 명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진 양주십일기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7부-함락2일차(1) 젖먹이들이 길가에 간과 뇌를 흩뿌리다!
8부-함락2일차(2) 고려여자들은 절개를 지켰는데, 너희 중국인은 수치를 모르는가?
원문 출처 : https://zh.wikisource.org/zh-hant/%E6%8F%9A%E5%B7%9E%E5%8D%81%E6%97%A5%E8%A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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凡可避處皆有人,必不肯容,由後至前,凡五進皆如是。
直至大門,已臨通衢,兵丁往來絡繹不絕,人以為危地而棄之。
予乃急入,得一榻,榻顛有仰頂,因緣柱登之,屈身向裏,喘息方定,忽聞隔牆吾弟哀號聲,又聞舉刀砍擊聲,凡三擊遂寂然。
少間復聞仲兄哀懇曰。
「吾有金在家地窖中,放我,當取獻。」
一擊復寂然。予此時神已離舍,心若焚膏,眼枯無淚,腸結欲斷,不復自主也。
旋有卒挾一婦人直入,欲宿此榻,婦不肯,強而後可,婦曰。
「此地近市,不可居。」
卒復攜之去,予幾不免焉。
室有仰屏,以席為之,不勝人,然緣之可以及梁,予以手兩扳樑上桁條而上,足托駝梁,下有席蔽,
中黑如漆,仍有兵至,以矛上搠,知是空虛,料無人在上,予始得竟日未遇兵。
然在下被刃者幾何人,街前每數騎過,必有數十男婦哀號隨其後。
是日雖不雨,亦無日色,不知旦暮。
至夕,軍騎稍疏,左右惟聞人聲悲泣,思吾弟兄已傷其半,伯兄亦未卜存亡,
予婦予子不知何處,欲蹤跡之,或得一見。且使知兄弟死所。
乃附梁徐下,躡足至前街,街中枕屍相藉,天暝莫辨為誰?俯屍遍呼,漠無應者。
遙見南首數火炬蜂擁而來,予急避之,循郭而走。
城下積屍如鱗,數蹶,聲與相觸,不能措足,則俯伏以手代步,每有所驚,即僕地如僵屍,久之始通於衢。
衢前後舉火者數處,照耀如白晝,逡巡累時,而後越,得達小路,路人昏夜互觸相驚駭,路不滿百步,自酉至亥方及兄家。
宅門閉不敢遽叩,俄聞婦人聲,知為吾嫂,始輕擊,應門者即予婦也。
伯兄已先返,吾婦子俱在,予與伯兄哭,然猶未敢遽告仲兄、季弟之被殺也。
嫂詢予,予依違答之。
予詢婦何以得免?婦曰。
「方卒之追逐也,子先奔,眾人繼之,獨遺我,我抱彭兒投屋下不得死,吾妹踢傷足亦臥焉。
卒持我二人至一室,屋中男婦幾十人皆魚貫而縛之。
卒因囑我於諸婦曰。
『看守之,無使逸去。』
卒持刀出,又一卒入,劫吾妹去。
久之,不見前卒至,遂紿諸婦得出。
出即遇洪嫗,相攜至故處,故倖免。」
洪嫗者仲兄內親也。
婦詢予,告以故,唏噓良久。
洪嫗攜宿飯相勸。
哽咽不可下。
外復四面火起,倍於昨夕,予不自安,潛出戶外,田中橫屍交砌,喘息猶存。
遙見何家墳中,樹木陰森,哭音成籟,或父呼子,或夫覓妻,呱呱之聲,草畔溪間,比比皆是,慘不忍聞。
回至兄宅,婦謂予曰。
「今日之事,惟有一死,請先子一死,以絕子累。彭兒在,子好為之!」
予知婦之果於死也,因與語竟夜,不得間,東方白矣。
후(後)를 경유(由)하여 전(前)에 지(至)하였는데, 무릇 5진(進)이 모두 이와 같았다.
직(直)하여 대문(大門)에 지(至)하였는데, 통구(通衢/큰 거리)를 임(臨/바라다봄)하니
이미(已) 병정(兵丁)의 왕래(往來)가 낙역(絡繹/왕래가 끊이지 않음)하고 불절(不絕)하였고,
인(人)이 위지(危地/위험한 곳)라 생각하여 기지(棄之)한 것이었다.
나는 이에 급입(急入)하여, 1 탑(榻/걸상)을 득(得)하였는데, 탑전(榻顛/걸상머리)은 앙정(仰頂/정수리가 높이 올라감)이 있어,
이런 인연(因緣)으로 주등(柱登/기둥으로 오름)하고, 굴신(屈身/몸을 앞으로 굽힘)하여 향리(向裏/안으로 나아감)하였고,
천식(喘息/가쁜 숨)이 바야흐로 정(定)하였는데, 홀연히(忽) 격장(隔牆/담을 사이에 둠)하여
내 동생의 애호(哀號/울부짖음)의 성(聲)이 문(聞)하였다.
또 거도(舉刀/칼을 빼어 듦)하여 감격(砍擊/베어 죽임)의 성(聲)을 문(聞)하였는데,
무릇 3격(擊)하였고 마침내 적연(寂然/아무 기척 없이 조용함)하였다.
소간(少間/잠깐 사이)에 다시 중형(仲兄/둘째형)이 애간(哀懇/애원함)하여 말함을 문(聞)하였는데,
「나는 금(金)이 있어 가(家)의 지교(地窖/땅굴) 중(中)에 있으니, 나를 방(放)하면, 마땅히 취헌(取獻)하리다!」
1격(擊)하자 다시 적연(寂然)하였다.
나는 이 때에 신이리사(神已離舍/귀신이 이미 집을 떠남)하고, 심(心)이 분고(焚膏/기름을 태움)한 것처럼,
안고(眼枯/눈이 마름)하여 무루(無淚/눈물이 나오지 않음)하였고, 창결(腸結/창자가 엉김)하여 단(斷/끊어짐)하고자 하였고,
더는 자주(自主/자기 몸을 통제함)하지 못하였다.
조금후에 졸(卒)이 있어 1부인(婦人)을 협(挾)하여 직입(直入)하였는데, 이 탑(榻)에서 숙(宿)하고자 하였고,
부(婦)가 불긍(不肯/들어주지 않음)하자, 강(強)하니 후(後)에 가(可)하였고, 부(婦)가 말하길
「이 지(地)는 근시(近市)하니, 거(居/자리)가 불가(不可)하오.」
졸(卒)이 다시 휴지(攜之)하고 거(去)하니, 나는 거의 면(免)하지 못할뻔 하였다.
실(室)에는 석(席/돗자리)으로서 만든 앙병(仰屏/높은 병풍)이 있었는데, 승인(勝人)하지 못할 것 같았고,
단(緣/가장자리)는 가(可)하다 여겨 이로써 양(梁/대들보)에 이르자, 나는 양손으로써 양상(樑上/대들보)을
반(扳/끌어당김)하여, 형조(桁條/도리, 서까래를 받치기 위해 기둥과 기둥 위에 걸쳐놓는 나무)로 올라갔고,
족(足)이 양(梁)에 탁타(托駝/올려놓음)하였다.
하(下)는 석폐(席蔽/돗자리로 덮음)가 있으니, 중흑(中黑)이 칠(漆/옻칠)과 같았다.
곧 병지(兵至)가 있었는데, 모(矛)로써 상삭(上搠/위를 찌름)하였으나, 이는 공허(空虛)함을 지(知)하였고,
상(上)에 있는 사람은 없다 요(料)하였다.
나는 비로소 득(得)하였고, 경일(竟日/온종일) 병(兵)을 미우(未遇)하였다.
그렇기는 하지만 재하(在下)에서 피인(被刃)하는 자(者)가 그 하인(何人)인가?
가전(街前/거리 앞)에 매번(每) 수기(數騎)가 과(過)하면, 필히(必) 수십(數十) 남부(男婦)의 애호(哀號/울부짖음)가 있어
그 후(後)를 수(隨)하였다.
이날은 비록 부우(不雨)하였으나, 역시(亦) 일색(日色)이 없었고, 단모(旦暮/아침저녁)을 부지(不知)하였다.
석(夕/저녁)에 이르러, 군기(軍騎)가 초소(稍疏/점차 멀어짐)하자, 좌우(左右)로 오직 사람이 비읍(悲泣/슬피 욺)하는 소리만
견(聞)하였는데, 사(思)하니 내 형제(弟兄)는 이미(已) 그 반(半)이 상(傷)하였고,
백형(伯兄) 역시(亦) 존망(存亡)을 미복(未卜/헤아리지 못함)하며,
내 부(婦)와 내 자(子)도 하처(何處)를 부지(不知)하니, 종적(蹤跡/발자취를 좇음)한다면, 혹(或) 일견(一見)을 득(得)하리라.
또한 형제(兄弟)의 사소(死所)를 지(知)하게 하리라!
이에 부량(附梁/대들보에 붙음)하여 서하(徐下)하였고, 섭족(躡足/가볍게 걸음)하여 전가(前街/앞 거리)에 지(至)하였는데,
가중(街中)에 침시(枕屍/드러누운 시체)가 상자(相藉/서로 깔림)하였고, 천명(天暝/날이 저묾)하니 누구인지 막변(莫辨)하였다.
시(屍)에 부(俯/고개를 숙임)하여 편호(遍呼/두루 부름)하였으나, 막(漠/조용함)하여 응자(應者)가 없었다.
남수(南首)를 요견(遙見)하니 수(數)개의 화거(火炬/횃불)가 봉옹(蜂擁/벌떼처럼 붐빔)하여 래(來)하니,
나는 급히(急) 피(避)하였고, 순곽(循郭/성곽을 돎)하여 주(走)하였다.
성하(城下)의 적시(積屍/겹겹이 쌓인 시체)가 인(鱗/물고기 비늘)과 같았고, 수궐(數蹶/수차례 넘어짐)하였으며,
서로 촉(觸)하여 소리가 나니, 조족(措足/발을 둚)할 수가 없었고,
즉 부복(俯伏/고개를 숙이고 엎드림)하고 손으로써 대보(代步)하였는데,
매번(每) 소성(所驚/두려운 바)이 있으면, 즉(即) 복지(僕地)함이 강시(僵屍/얼어 죽은 송장)와 같았고,
구지(久之)하니 비로소 구(衢/네거리)에 통(通)하였다.
구(衢) 전후(前後)로 거화자(舉火者)가 수처(數處)였으며, 조요(照耀/밝게 비치어서 빛남)가 백주(白晝/대낮)과 같았고,
준수(逡巡/어떤 일을 단행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함)하고 누시(累時/시간을 거듭함)하였으며,
이후(而後)에 월(越/지나감)하여, 소로(小路)에 득달(得達/목적지에 도달함)하였는데,
로인(路人)이 혼야(昏夜/깜깜한 밤)하여 호상(互觸/서로 닿음)하면 서로 경해(驚駭/매우 놀람)하였고,
로(路)는 백보(百步)를 불만(不滿/차지 않음)하였는데,
유시(酉/17~19시)로부터 해시(亥/21시~23시)에 이르러서야 바야흐로 형가(兄家)에 이르렀다.
댁문(宅門)은 폐(閉)하였는데, 감히(敢) 거고(遽叩/급히 두드림)하지 못하였고,
갑자기 부인(婦人)의 성(聲)을 문(聞)하니, 내 형수(嫂)임을 지(知)하였고, 비로소 경적(輕擊/가볍게 침)하였는데,
응문(應門)하는 자(者)는 즉(即) 나의 부(婦)였다.
백형(伯兄)은 이미(已) 선반(先返)하였고, 나의 부자(婦子)도 구재(俱在/함께 있음)하였는데, 나는 백형(伯兄)과 함께
곡(哭)하였으며, 그러나 오히려 감히(敢) 중형(仲兄)과 계제(季弟)의 피살(被殺)을 급고(遽告)하지는 못하였다.
수(嫂)가 나에게 순(詢)하자, 나는 의위(依違/우물쭈물함)하여 답(答)하였다.
나는 부(婦)에게 어찌 득면(得免)하였는지 순(詢)하였는데, 부(婦)가 말하길
「바야흐로 졸(卒)이 추축(追逐)하였는데, 자(子)가 선분(先奔)하였고, 중인(眾人)이 계지(繼之)하였는데,
홀로 유아(遺我)하니, 나는 팽아(彭兒)를 포(抱/안음)하여 옥하(屋下)로 투(投/뛰어듦)하였는데 득사(得死)하지 않았고,
내 매(妹)는 척(踢/당황함)하여 상족(傷足)하여 역시(亦) 와(臥/엎드림)하였소.
졸(卒)이 우리 2인(人)을 지(持/잡음)하여 일실(一室)에 지(至)하였는데,
옥중(屋中)의 남부(男婦) 기십인(幾十人)이 모두 어관(魚貫/물고기를 꿴 것같이 줄줄이 있음)하고 박지(縛之)하였소.
졸(卒)이 제부(諸婦)에게 나를 촉(囑/당부함)함으로 인(因)하여 말하길
『간수(看守/감시하고 지킴)하라! 일거(逸去/달아나 가버림)하지 못하게 하라!』
졸(卒)이 지도(持刀)하여 출(出)하였고, 또 1졸(卒)이 입(入)하였는데, 내 매(妹)를 겁(劫)하여 거(去)하였소.
한참 동안 전졸(前卒)의 지(至)를 불견(不見)하니, 마침내 제부(諸婦)를 태(紿/속임)하여 득출(得出)하였소.
출(出)하여 즉시(即) 홍구(洪嫗/홍 할머니)를 우(遇)하였는데,
상휴(相攜)하여 고처(故處/옛날에 살던 곳)에 지(至)하였고, 이런 연고(故)로 행면(倖免/요행히 벗어남)하였소.」
홍구(洪嫗)란 자(者)는 중형(仲兄)의 내친(內親/아내의 친척)이었다.
부(婦)가 나에게 순(詢)하였는데, 이고(以故/겪은 것)를 고(告)하였고, 희허(唏噓/탄식하여 움)가 양구(良久/꽤 오래)하였다.
홍구(洪嫗)가 숙반(宿飯/식은 밥)을 휴(攜)하여 상권(相勸)하였는데, 경인(哽咽/목이 멕임)하여 하(下)가 불가(不可)하였다.
외(外)가 다시 사면(四面)이 화기(火起)하였는데, 작석(昨夕/어제 저녁)에 배(倍)였고,
나는 자안(自安/스스로를 안정시킴)하지 못하여, 호외(戶外/집밖)로 잠출(潛出)하였는데,
전중(田中)에 횡시(橫屍/뒤엉킨 시신)가 교체(交砌/겹쳐 쌓임)하였고, 천식(喘息/숨을 헐떡임)이 유존(猶存)하였다.
하가(何家)의 분중(墳中/무덤 가운데)를 요견(遙見)하니, 수목(樹木)이 음삼(陰森/무성하여 어두움)하였는데,
곡음(哭音)이 성뢰(成籟/퉁소 부는 것처럼 울림)하였고, 혹(或) 부(父)가 자(子)를 호(呼)하거나,
혹(或) 부(夫)가 처(妻)를 멱(覓/찾음)하거나, 고고(呱呱/젖먹이의 울음소리)의 성(聲)이
초반(草畔/풀밭)과 계간(溪間/냇가)에 비비개시(比比皆是/도처에 있음)하니, 참혹(慘)하여 문(聞)을 불인(不忍)하였다.
회(回)하여 형댁(兄宅)에 지(至)하였는데, 부(婦)가 나를 일컬어 말하길
「금일(今日)의 사(事)는, 오직 일사(一死)만 있을 뿐이니, 청(請)컨대 당신보다 먼저 한 번 죽는다면,
이로써 당신은 연루(累)를 절(絕)하시오!
팽아(彭兒)가 있으니, 당신은 잘 지내시오!」
나는 부(婦)의 과(果)가 사(死)에 있음을 지(知)하였다.
이로 인(因)하여 여어(與語/더불어 말함)하여 경야(竟夜/밤을 새움)하였고, 득간(得間/짬을 얻음)하지 못하였는데,
동쪽(東)이 바야흐로 백(白)하였다.
무릇 숨을 수 있는 곳마다 모두 사람이 있었고 필히 허용하지 않으니 뒤를 거쳐 앞에 이르며 무릇 5번 간 곳이 모두 이와 같았다.
곧바로 대문에 이르러 큰 거리를 바라보니 이미 병정의 왕래가 끊이지 않았고
사람이 (이 집은) 위험한 곳이라 생각하여 버린 것이었다.
이에 나는 급히 (집안으로) 들어가 하나의 걸상을 얻었는데 걸상 머리에 앙정이 있어
이런 연유로 기둥을 타고 올라가 몸을 앞으로 굽히며 안으로 들어가니 가쁜 숨이 바야흐로 안정되었는데
홀연히 담 사이로 내 동생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또 칼을 빼어 들고 베어 죽이는 소리가 들렸는데 무릇 3번 치더니 마침내 조용해졌다.
잠깐 사이에 다시 둘째형이 애원하여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나는 금이 있어 집 땅굴 속에 있으니 나를 풀어주면 마땅히 취하여 바치리다!」
한 번 치자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이때에 귀신이 이미 집을 떠나고 심장이 기름을 태운 것 같았고,
눈이 말라 눈물도 나오지 않았으며, 창자가 엉켜 끊어진 것처럼 더는 내 몸을 통제하지 못하였다.
조금 후에 병졸이 있어 한 부인을 끼고 곧장 들어왔는데 이 걸상에서 자고자 하였는데
부인이 들어주지 않자 강제로 하려 하자 이후에 허락하며 부인이 말하길
「이 땅은 저자와 가까우니 잠자리가 불가하오!」
병졸이 다시 끼고 가버리니 나는 거의 면하지 못 할 뻔하였다.
거실에 돗자리로 만든 높은 병풍이 있었는데 사람을 지탱하지는 못할 것 같았으나 가장자리는 가능하다 여겨
이로써 대들보에 이르자 나는 양손으로 대들보를 끌어당기며 기둥 사이에 걸쳐놓은 도리로 올라갔고 발은 대들보에 올려놓았다.
아래는 돗자리로 덮으니 중간의 어두움이 옻나무와 같았다.
곧 병졸이 이르렀는데 창으로 위를 찔렀으나 곧 빈 것을 알게 되었고 위에는 사람이 없다 헤아였다.
나는 비로소 (틈을) 얻을 수 있었고 온종일 병졸을 만나지 않았다.
그렇기는 하지만 아래에서 칼날에 당하는 자는 그 얼마인가?
앞 거리에 매번 몇 명의 기병이 지나가면 반드시 수십 명의 남자와 부인이 울부짖으며 그 뒤를 따라갔다.
이날은 비록 비가 오지 않았으나 또한 햇빛이 없으니 아침저녁을 알지 못하였다.
저녁에 이르러 말 탄 군사가 점차 멀어지자 좌우로 오직 사람이 슬피 우는 소리만 들렸는데
생각하니 내 형제는 이미 그 반이 상하였고 큰형 또한 존망을 헤아리지 못하며,
내 부인과 내 자식도 어느 곳에 있는지 알지 못하니
<발자취를 좇는다면 혹 한 번 볼 수 있으리라! 또한 형제의 죽은 곳을 알게 하리라!>
이에 대들보에 붙어 서서히 내려와서 가볍게 걸어 앞 거리에 이르렀는데
도로 가운데 드러누운 시체가 서로 깔려있었고 날이 저무니 누구인지 분별하지 못하였다.
고개를 숙여 시신에 대고 불러 보았으나 조용하여 응하는 자가 없었다.
멀리 남쪽 머리를 바라보니 여러 개의 횃불이 벌떼처럼 붐비며 오니 나는 급히 피하였고 성곽을 따라 달아났다.
성 아래에 겹겹이 쌓인 시체가 물고기 비닐과 같았고 수차례 넘어졌고, 서로 접촉하여 소리가 나니 발을 둘 수가 없었다.
곧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 손을 써서 대신 걸었는데 매번 두려운 바가 있으면
곧 땅에 엎드리는 것이 강시(얼어 죽은 송장)와 같았고 한참만에 비로소 네거리에 통하였다.
네거리 전후로 불을 든 자가 여러 곳이었으며 밝게 비추는 것이 대낮과 같으니
우물쭈물하며 시간을 거듭하다 이후에 작은 길로 득달같이 지나갔다.
길의 사람들은 깜깜한 밤이라 서로 닿으면 서로 놀랐다.
길은 백보도 차지 않았는데도 유시(17~19시)로부터 해시(21시~23시)에 이르러서야 바야흐로 형집에 이르렀다.
집 문은 닫혀 있었는데 감히 급히 두드리지 못하였고, 갑자기 부인의 소리를 들었는데 내 형수임을 알게 되니
비로소 가볍게 두드렸는데 문을 응한 자는 곧 나의 부인이었다.
큰형은 이미 먼저 돌아왔고 나의 부인과 아들도 함께 있었는데 나는 큰형과 함께 곡하였으나
오히려 감히 둘째형과 막내의 피살을 급하게 고하지는 못하였다.
형수가 나에게 묻자 나는 우물쭈물하며 답하였다.
나는 부인에게 어찌 탈출하였는지 물었는데 부인이 말하길
「바야흐로 병졸이 쫓아왔는데 당신이 먼저 달아났고 무리가 이어 갔는데 나만 홀로 남게 되니
나는 팽아를 안고 집 아래로 뛰어내렸으나 죽지는 않았고 내 누이는 당황하여 발을 다쳤고 또한 눕게 되었소.
병졸이 우리 두 사람을 잡아서 한 거실에 이르렀는데 집안에는 남자와 부인 수십 명이 모두 물고기를 꿴 것과 같이
포박되어 있었소.
병졸이 여러 부인에게 나를 당부하며 말하길
『감시하고 지키라! 달아나지 못하게 하라!』
병졸이 칼을 잡고 나갔는데 또 병졸 한 명이 들어와 내 누이를 겁박하며 가버렸소.
한참 뒤에 전의 병졸이 오는 것을 보이지 않게 되자 마침내 여러 부인을 속여 탈출하였소.
나와서 곧 홍 할머니를 만났는데 서로 이끌며 옛날에 살던 곳으로 이르렀고 이런 연고로 요행히 벗어났소.」
홍 할머니란 자는 둘째형 아내의 친척이었다.
부인이 나에게 물었는데 겪은 대로 고하였고 꽤 오랫동안 탄식하며 울었다.
홍 할머니가 식은 밥을 가져와 서로 권하였는데 목이 멕혀 내려가지 못하였다.
밖에 다시 사방에서 불이 일어났는데 어제저녁의 곱절이었고
나는 스스로 안정되지 못하여 집 밖으로 몰래 나갔는데 밭 가운데 뒤엉킨 시신이 겹쳐 쌓여 있었고
오히려 헐떡이는 숨소리도 있었다.
하씨 가문의 분묘 가운데를 멀리서 바라보니 수목이 무성하여 어두웠고 곡소리가 퉁소 부는 것처럼 울렸는데
혹 아비가 자식을 부르거나, 혹 남편이 처를 찾거나, 젖먹이가 우는 소리가 풀밭과 냇가 도처에 있으니
참혹하여 차마 듣지를 못하였다.
돌아와 형집에 이르렀는데 부인이 나를 일컬어 말하길
「금일의 일은 오직 한 번 죽음만 있을 뿐이니 청컨대 당신 보다 먼저 한 번 죽는다면 이로써 당신은 연루를 끊으시오!
팽아가 있으니 당신은 잘 지내시오!」
나는 부인의 뜻이 과연 죽음에 있음을 알았고, 이로 인하여 밤을 새워 더불어 말하였는데,
한가한 틈도 얻지 못하고 동쪽이 바야흐로 밝아왔다.
요약.
양주성 함락 2일차 1645년 4월 26일 교씨 집에서 청병 1명이 50명의 남자들을 차례대로 죽이려 하자
왕수초는 필사의 탈출을 감행한다.
옆집으로 달아난 왕수초는 거실로 들어가 침대위 앙정으로 올라가 숨었다.
이때 옆집에서 동생과 형이 죽는 소리를 듣자 왕수초는 혼이 빠졌다.
이어 도리로 올라가 숨은 왕수초는 밤이 되자 처자 생각에 내려와 밖을 살피니 도로에는 수많은 시신들이 쌓여 있었다.
성곽을 따라 급히 도주하던 왕수초는 겹겹이 쌓인 시신들을 보게 되었고 기어서 네거리에 이르렀다.
간신히 작은 길을 통해 4시간 만에 겨우 큰형 집에 도착한 왕수초는 처자와 상봉한다.
당시 지붕 위로 청병이 올라오자 왕수초가 먼저 달아나니 부인은 아이를 안고 지붕 아래로 떨어졌으나
여동생이 발을 다쳐 결국 청병에게 사로잡혀 어떤 집으로 끌려갔다가 여동생은 청병에 의해 끌려갔고,
자신은 탈출하여 길에서 만난 홍 할머니와 함께 이곳에 왔다 말한다.
왕수초는 불안하여 잠시 집 밖으로 나왔는데 곳곳에 가족을 애타게 찾는 목소리만 들려왔다.
집에 돌아오니 부인이 이번에 반드시 죽을 것이니 아들과 함께 잘살라 말한다.
이에 왕수초는 부인과 애처롭게 밤을 지새운다.
그리고 4월 27일 아침이 밝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