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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021의 게시물 표시

홍 타이지 죽다! 6부-도르곤을 협박하는 무장들과 호오거의 야심!

  1부-전조 증상 2부-급사(앉아서 죽다) 3부-사망 2일차 태종을 따라 죽은 장수들! 4부-후계자는 없다! 5부-친왕회의 하루전 치열한 암투! 1. 황제의 절대권력과 약해진 친왕의 권력 홍 타이지는 황권을 강화하기 위해 팔기에 16명의 기주(구사 어전)를 세웁니다. 이 구사 어전들은 계속 교체되었고 일종의 관료 시스템이 정착됩니다. 모든 권력은 황제 홍 타이지로부터 나왔고 친왕들의 권력은 제한되었습니다. 절대 권력자 홍 타이지가 급사한 이후에 이 황권 강화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되었습니다. 바로 홍 타이지가 버이러 당시부터 키운 무장들인 정황기/양황기 장수들의 절대 충성심이었지요. 사르후 전역 당시 포로로 잡힌 이민환의 건주문견록中 紅歹是勇力絶倫。頗有戰功。所領將卒皆精銳。 홍 타이지(홍대시/ 紅歹是 )는 용력이 절륜하여 자못 전공이 있었고 거느리는 장졸은 모두 정예로웠다. 정충신은 홍 타이지를 영웅호걸다웠다고 기록하였고, 다이샨은 인자하였다, 망굴타이는 음흉하고 사나웠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이민환은 다이샨은 관대하였고 홍 타이지는 용력이 절륜하다고 기록하였지요. 팔기군 중에서도 홍 타이지 직속기는 그 용맹함이 다른 기를 압도하였습니다. 이 장수들의 용맹함과 절대적인 충성심을 기반으로 홍 타이지는 한과 황제가 될 수 있었고 또한 이들을 전략적으로 키웁니다. 결정적으로 황궁 수비를 정황기와 양황기 바야라군이 도맡고 있었다는 점은 친왕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습니다. 기록을 살펴보면 친왕 직속의 니루는 각각 7니루(장정 1400명) 정도에 불과하였고, 군왕, 대신들도 1~3니루밖에 소유하고 있질 않았습니다. 2. 움직이는 황기 장수들 정황기/양황기는 대대로 황제 직속기였습니다. 누르하치 당시에도 총 221니루 중에 64.5니루로 가장 병력이 많았고, 1654년 호구 조사에서도 정황기 만주족 장정은 7174명, 양황기 장정은 6523명으로 역시 병력이 가장 많았습니다. 또한 배속된 몽고인들도 3543명, 4428명으로 압도적이었으며,  다른 기는 ...

홍 타이지 죽다! 4부-후계자는 없다!

  1부-전조 증상 2부-급사(앉아서 죽다) 3부-사망 2일차 태종을 따라 죽은 장수들! 누르하치와 홍 타이지는 둘 다 후계자를 정하지 않고 사망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누르하치는 한 번 장남 추옝을 후계자를 세웠다가 처형하였고, 홍 타이지는 장남을 친왕에 봉작하여 이복형제들과 같은 반열에 세웠으나 중국식 국가를 표방하던 청을 개국하고도 태자를 세우지 않았지요. 누르하치는 장남을 직접 처형한 가슴 아픈 일이 있은 이후 후계자를 지목하지 않고  자신의 사후 8명의 버이러들이 회의를 통해 차기 한을 결정하라 말하였지요. 홍 타이지는 이복형과 동생, 사촌들을 친왕에 임명하였는데 장남인 호오거도 친왕에 임명하여 누가 보더라도 차기 후계자는 호오거가 명백해 보였습니다. <태조 누르하치의 후계자론> -아버지를 이어받아 나라에 주인 되게 할 때에는 힘세고 강한 사람을 주인 되게 하지 마라!- -새로운 한이  너희 8버이러들의 말을 따르지 않고 좋음과 의로움을 집행하지 않는다면  8 버이러들 너희가 임명한 한을 바꾸며 너희의 말을 거절하지 않는 좋은 사람을 선발하고 임명하라!- 즉 누르하치는 후계자로 삼았던 장남 추옝이 동생들과 개국 5대신을 죽이겠다 협박하고 후에는 자신마저 저주하는 일이 생기자 강한 권력을 가진 한의 출현을 경계하였습니다. 또한 8버이러들이 한이 옳지 않다 여긴다면 한을 갈아 치워도 좋다는 말까지 하였지요. 이런 상태에서 누르하치의 뒤를 이어 홍 타이지가 승계하였습니다. 이때 홍 타이지 위에는 서열상 3명의 버이러들이 있었습니다. 1. 암바 버이러 다이샨 : 누르하치의 차남 2. 자친 버이러 아민 : 슈르가치의 차남 3. 이라치 버이러 망굴타이 : 누르하치의 5남 이중 아민은 누르하치의 친동생 슈르가치의 아들이라 후계자로는 거론되지 않았고, 망굴타이는 모친 푸차 군다이를 살해한 이유로 후계자에서 멀어지니 결국 다이샨과 홍 타이지가 경합하였는데, 다이샨은 누르하치의 첫 번째 부인 소생이긴 ...

홍 타이지 죽다! 3부-사망 2일차 태종을 따라 죽은 장수들!

  1부-전조 증상 2부-급사(앉아서 죽다) 홍 타이지가 급사한 다음날 홍 타이지의 시신은 숭정전에 봉안되었고 모든 왕 포함 신료들은 7일간 목욕재계하고 그 앞에서 3일간 곡을 하였습니다. 이때 홍 타이지의 죽음을 참지 못하고 황제의 곁에 순장되어, 영원히 태종을 호위하겠다는 장수들이 등장했습니다. 이렇게 급박한 상황 속에서 서서히 후계자에 대한 암투가 시작되기 시작합니다. 청실록 세조 1643년 8월 10일 ○辛未。酉刻。奏樂。迎梓宮出奉安於崇政殿。諸王貝勒大小群臣朝夕哭臨三日每入哭時 梓宮前、焚香獻饌眾皆跪奠酒三叩頭三起立哭。哭臨禮畢王貝勒、貝子、公等、及眾福金歸第齋戒部院諸臣齋宿本衙門 閒散諸臣、俱赴篤恭殿齋戒。固山額真、昂邦章京承政等官命婦以下、於初十日暮。各還家諸王率固山額真等每日 黎明哭臨一次祭奠如前者又七日。禁止屠宰凡十三日 ○ 1643년 8월 10일 17~19시에 주악을 울리고 황제의 관을 받들어 숭정전에 봉안하였다. 여러 왕, 버이러, 대소 신하들이 아침 저녁으로 3일간 곡하였다. 매번 곡하러 들어오면 재궁 앞에 분향하고 음식을 바쳤으며 무리가 모두 무릎꿇고 술을 올리고  3번 고두하고 3번 기립하여 곡하였다. 곡하는 예를 끝마치자 왕, 버이러, 버이서, 공작 등이 여러 푸진과 더불어 저택으로 돌아가 몸을 재계하였다. 부와 원의 여러 신하들은 본 관청에서 몸을 재계하고 숙직하였고 그밖의 여러 신하들은 모두 재계하여 독공전에 이르렀다. 구사어전과 암반장긴, 승정 등의 부인 이하는 초 10일 밤에 각각 집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여러 왕이 구사어전 등을 인솔하여 매일 여명에 1차 곡하며 전과같이 제사 지낸 것이 또한 7일이었다. 가축 도살을 무릇 13일간 금지하였다. 청실록 세조 1643년 8월 10일 ○時章京敦達里、安達里二人願殉敦達里滿洲人幼事 太宗。後分隸和碩肅親王豪格。及 太宗賓天後。敦達里以幼蒙恩養不忍永離。遂以身殉。諸王貝勒等甚義之。以敦達里志不忘君忠忱足尚贈甲喇章京子孫永免徭役。 倘干犯重典應赦者即與開釋不應赦者仍減等官爵世襲勿替安達里葉赫人自來歸時 先帝憐而養之。由微賤、沐...

홍 타이지 죽다! 2부-급사(앉아서 죽다)

  1부-전조 증상 1643년 8월 9일 이날 홍 타이지는 평상시와 다름없는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습니다. 몽고 투머트 부족에서 바친 조공 말을 자란 장긴과 니루 장긴들에게 포상으로 내려줬고 궁에 황후, 비, 공주들을 불러 명나라에서 약탈한 비단 등 귀중품을 하사하였지요. 이 당시 명나라 정벌전 승전을 축하하기 위해 시집간 공주들도 모두 궁에 들어와 있었지요. 하루 일정을 모두 마치고 이날 밤 10시경 홍 타이지는 앉아 있다 급사하게 됩니다. 청실록에는 홍 타이지가 평상시 병이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실상 4달 전에 머리가 어지럽다며 조선에 침을 잘 놓는 명의를 보내달라 요구하기도 하였습니다. 병명은 뇌중풍, 뇌졸증으로 추정되며 잠들기 전 갑자기 죽은 것 같습니다. 홍 타이지가 밤중에 급사하자 친왕~니루 장긴와 소현세자, 공주~니루장긴 부인 이상을 모두 소집하였고, 이들은 모두 흰 비단옷을 입었으며 남자는 변발을 자르고 여자는 머리털을 자르게 하였는데 시집간 공주들은 자르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모두 장례식장 앞에 꿇어앉아 통곡하였지요. 청실록 태종 1643년 8월 9일 ○是日。 上偕皇后諸妃、召固倫公主等、至崇政殿。以征明所獲緞疋財物之佳者、賜科爾沁國福妃、賢妃、及固倫公主、諸福金等有差。 其未經閱視者、候再查閱。遂還宮 ○是夜。亥刻。上無疾。端坐而崩。 上在位十有七年。壽五十有二 ○ 1643년 8월 9일에 상이 황후, 여러 비와 함께 구룬 공주 등을 불러 숭전전에 이르렀다. 명을 정벌하여 얻은 단필, 재물, 여러 보물들을 코르친 푸진, 현비와 더불어 구룬 공주와 여러 푸진 등에게  차등을 두어 상을 내렸다. 그 미처 살펴보지 못한 물품은 후에 다시 사열하게 하고는 마침내 궁으로 돌아왔다. ○ 이날 밤 21시~23시에 상이 병이 없었는데 단정하게 앉아서 붕어하였다. 상의 재위 17년이었고 나이 52세였다. 청실록 세조 1643년 8월 9일 ○庚午。亥刻太宗文皇帝賓天內外和碩親王以下牛彔章京以上朝鮮國世子等及公主和碩格格和碩福金以下牛彔章京等 官命婦以上、咸集設鹵簿列鞴鞍馬...

홍 타이지 죽다! 1부-전조 증상

  후금과 청나라 2대 황제인 홍 타이지는 52세에 급사합니다. 평생을 요동, 요서, 화북, 몽고, 조선의 전쟁터에서 종횡무진 돌아다녔으니 그의 체력이 아무리 우수하다 하더라도 몸은 서서히 병들어 가고 있었지요. 허나 홍 타이지 자신도 그렇게 빨리 죽을 줄은 생각도 못했을 겁니다. 후계자에 대한, 이후 중원공략에 대한 어떠한 대책도 세우지 못한 상태에서 급사했기 때문이었지요. 청실록에는 태조가 병이 없다가 갑자기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이는 제대로 기록하지 않은 것으로  조선의 기록에는 이미 죽기 4달 전에 조선에 사신을 보내 중풍으로 머리가 어질어질하다며  중풍에 탁월한 효능의 대나무를 가열하여 즙으로 짜낸 죽력을 요구하였고, 침술을 잘하는 명의와 약을 잘 조제하는 약의도 보내달라 청하였습니다. 유달의 침술은 나름 효능이 있던 모양으로 이전에도 청나라에 파견된 적이 있었습니다. 1. 영웅호걸의 용모 정충신의 보고 中 -홍태주는 똑똑하고 용감하기가 보통이 아니나 시기심이 많아- -홍태시(洪太市)는 오랑캐 중의 영웅호걸이다- -임진생(壬辰生)이라고 합니다. 또한 홍태시는 생김새가 준수하다고 합니다- -홍태시란 자가 가장 호걸스러웠습니다- 2. 멈추지 않는 코피  청실록 1641년 8월 19일 기사中 ○壬戌。上至松山。陳師於松山杏山之間。橫截大路駐營。先是上行急。鼻衄不止、承以盌。行三日、衄方止。 諸王貝勒大臣、共議攻圍之策。 上笑曰。朕但恐敵人聞朕親至。將潜遁耳。倘蒙天眷佑。敵兵不逃。朕必令爾等破此敵。如縱犬逐獸。 ○1641년 8월 19일에 상이 송산에 이르러 송산과 행산 사이에 진영을 벌이었는데 대로를 가로질러 주둔하였다. 이에 앞서  상이 급하게 행군하여 코피가 멈추지 않았고 사발로 받았다. 행군한 지 3일 만에 코피가 바야흐로 멈추었다. 여러 왕과 버이러, 암반들이 포위공격을 의논하여 정하였는데 상이 웃으며 말하길 <짐은 단지 적군이 짐이 친정하였다는 것을 듣고 몰래 도망갈까 두려워하였노라!  만일 하늘의 보우를 입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