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위화도 회군 1년 전에 작성된 이색의 <이자춘 신도비>를 근거로 [이성계 여진족설]을 주장하시는 분은 [이성계가 여진족이 절대 아닌 이유]를 논파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요. 위화도 회군 전 이성계 가문내역이 쓰인 신도비 이성계 여진족설은 이색의 글을 논파해야만 합니다.(실상 불가능) 혹 이렇게 주장하시는 분도 계시는 것 같습니다. <위화도 회군 전이라도 친한 사이니까 족보 따위는 조작 가능한거 아냐?> 뭐 그렇다고 치자고요. 하지만 딱 하나 절대 논파하지 못할 팩트가 신도비에 존재합니다. <이색의 이자춘 신도비 中> 공의 이름은 자춘(子春)이며, 자(字)도 자춘이다. 이(齒)를 갈만한 나이에 범상한 아이들과는 다른 바가 있었다. 차츰 자라면서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하여, 아버지의 벼슬을 계승하자 사졸(士卒)들이 즐겨 따랐다. 지정(至正) 을미년(공민왕 4, 1355) 선왕(先王)을 뵈었더니, 선왕은 “그대의 조부와 아버지가 몸은 비록 외국에 있었으나 , 마음은 우리 고려의 왕실에 있었다. 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실로 총애하고 칭찬하셨다. 이제 그대가 너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욕되게 함이 없으니, 내 장차 너를 옥(玉)같은 사람으로 만들 것이다” 하였다. 고려사절요 공민왕 1355년 12월 기사中 ○ 우리 환조(桓祖 이자춘(李子春))가 쌍성(雙城) 지방의 천호(千戶)로서 왕을 뵈었더니, 왕이 이르기를, “네 할아버지와 네 아버지는 몸은 비록 원 나라에 귀화하였으나 그들의 마음이 우리 왕실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 고조(祖考)께서도 총애하고 가상하게 여겼다. 이제 너는 할아버지, 아버지를 욕되게 함이 없을지어다. 그러면 내가 장차 그대를 잘 성취시켜 주리라." 하였다. ○我桓祖,以雙城等處千戶,來見,王曰,乃祖乃父,身雖在外,乃心王室,我祖考,實寵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