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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021의 게시물 표시

이성계가 여진족 출신이라고?? (1)

  일전에 위화도 회군 1년 전에 작성된 이색의 <이자춘 신도비>를 근거로 [이성계 여진족설]을 주장하시는 분은 [이성계가 여진족이 절대 아닌 이유]를 논파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요. 위화도 회군 전 이성계 가문내역이 쓰인 신도비 이성계 여진족설은 이색의 글을 논파해야만 합니다.(실상 불가능) 혹 이렇게 주장하시는 분도 계시는 것 같습니다. <위화도 회군 전이라도 친한 사이니까  족보 따위는 조작 가능한거 아냐?> 뭐 그렇다고 치자고요. 하지만 딱 하나 절대 논파하지 못할 팩트가 신도비에 존재합니다. <이색의 이자춘 신도비 中> 공의 이름은 자춘(子春)이며, 자(字)도 자춘이다. 이(齒)를 갈만한 나이에 범상한 아이들과는 다른 바가 있었다.  차츰 자라면서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하여, 아버지의 벼슬을 계승하자 사졸(士卒)들이 즐겨 따랐다.  지정(至正) 을미년(공민왕 4, 1355) 선왕(先王)을 뵈었더니,  선왕은 “그대의 조부와 아버지가  몸은 비록 외국에 있었으나 , 마음은 우리 고려의 왕실에 있었다.  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실로 총애하고 칭찬하셨다.  이제 그대가 너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욕되게 함이 없으니,  내 장차 너를 옥(玉)같은 사람으로 만들 것이다” 하였다. 고려사절요 공민왕 1355년 12월 기사中 ○ 우리 환조(桓祖 이자춘(李子春))가 쌍성(雙城) 지방의 천호(千戶)로서 왕을 뵈었더니, 왕이 이르기를,  “네 할아버지와 네 아버지는 몸은 비록  원 나라에 귀화하였으나  그들의 마음이 우리 왕실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 고조(祖考)께서도 총애하고 가상하게 여겼다.  이제 너는 할아버지, 아버지를 욕되게 함이 없을지어다. 그러면 내가 장차 그대를 잘 성취시켜 주리라." 하였다.  ○我桓祖,以雙城等處千戶,來見,王曰,乃祖乃父,身雖在外,乃心王室,我祖考,實寵嘉...

후삼국 눈앞의 호족도 통제 못한 신라(경주)

  고려사절요 925년 10월 기사中 ○ 겨울 10월에 고울부(高鬱府) 장군 능문(能文)이 사졸을 거느리고 와서 의탁하였는데,     왕은 그 성이 신라의 왕도에서 가까우므로 그를 위로하여 돌려보내고     다만 그 휘하의 시랑(侍郞) 배근(杯近)과 대감(大監) 명재(明才)ㆍ상술(相述)ㆍ궁식(弓式) 등만 머무르게 하였다. 고울부가 어딘고 하면 바로 경주 서북쪽에 위치한 현 영천입니다. 후삼국 9주 4편 양주 지리  http://cafe.naver.com/booheong/58715 능문 : 견훤때메 몬살겠심더. 고려님에게 항복 원함! 왕건 :  좋긴 한데~ 좀 그렇다. ㅎㅎ                           아무리 내가 대세라도 임금이 있는데 ㅎㅎ 신라 : 이놈들아... 내가 왕이다... 견훤 : 이것들 봐라? 내가 쫄로 보이지?

사르후 패전 직후 궁궐덕후 광해군의 명령

  광해군의 명에 의해 사르후에 파병된 조선군은 장수 22명에 병졸 12830명이었는데, 이들 중에 10146명이 오랑캐 땅에서 산화하였습니다. [ 사르후 전투의 조선군 전사자 현황(만력제의 조사 명령) ] ​ 이 소식은 1619년 3월 12일에 조선 조정에 보고되었는데, 11일 후 광해군은 다음과 같은 명을 내립니다. ​ 조선왕조실록 1619년 3월 23일 기사中 영건 도감에 전교하여 경덕궁 공사를 연내에 완공하라 명하다 영건 도감에 전교하였다. “거처를 옮길 날이 임박했는데 경덕궁의 역사는 날로 지지부진해지고 있다. 서둘러 점검하고 감독하여 금년 내로 조속히 역사를 마치도록 하라.” ​ 다음날 광해군은 다시 명을 연이어 내립니다. ​ 조선왕조실록 1619년 3월 23일 기사中 벌목한 재목을 운반하지 않은 황연 감사 이덕형을 살피라고 전교하다 전교하였다. “ 궁궐의 역사를 중지하라는 명을 내린 적이 없는데도 황연 감사(黃延監司) 이덕형(李德泂)은 이미 벌목해 놓은 재목을 실어 운반하지 않고 있다. 극히 부당하니 살피도록 하라.” ​ 조선왕조실록 1619년 4월 1일 기사中 왕이 양 궁의 돌 나르는 부역의 감독을 각별히 신칙하다 전교하였다. “ 양 궁의 석역(石役)이 매우 엄청난데 돌을 실어 나르는 일이 나날이 해이해진다 고 하니, 각별히 감독하여 속히 연달아 실어 들이게 하라.” ​ 당시 벌채하고 운반할 재목의 수량 1만5백개 -_-;;; 엄청난 양의 돌을 날라야 하는데 이것들이 해이해졌다구!!! ​ 조선왕조실록 1619년 4월 1일 기사中 영건 도감이 역사에 필요한 재목을 호송시킬 것을 청하다 영건 도감이 아뢰기를, “지난해 재목을 마련할 때 물 위와 물 아래에서 모두 1만 5백여 본을 벌채하거나 구입 하였습니다. 그런데 인경궁(仁慶宮)에 두 정문을 만들고 각 전각을 수리하고 단장하고 또 새로 월랑을 만들고 경덕궁(慶德宮)의 각처 역사를 올 봄부터 시작하였는데 이미 반입된 재목의 숫자로 본다면 앞으로 써야 할 것이 태반이나 부족하니, 매우 ...

1716년 강희제가 로마 교황청에 보낸 만주어 서신

  부흥 카페  메로나님 께서 요청하신 만주어 국서를 번역해 보았습니다. https://cafe.naver.com/booheong/191271 -배경 : 1706년, 1708년 강희제가 로마 교황청에 포교 관련 사신을 보냄   1. 1706년 사신 : 선교사 안토니오 드 바로스 신부, 앙투안 드 보볼리어      → 포르투갈 해안에서 선박 전복사고로 사망   2. 1708년 사신 : 호세 라몬 아르소, 예수회 선교사 주세페 프로바나 -1716년 강희제는 앞서 보낸 사신단이 돌아오지 않자 다시 무영전 관리들의 명의로  목판에 인쇄하고 광동 순무의 인장을 찍어 똑같은 편지 다수를 서양인과 러시아인에게 주어 로마 교황청에 전달하게 함 -글 : 만주문, 한문, 라틴문 합본 (강희제 감수) <그림을 크게 보실 분은 그림을 클릭하시고 원문보기를 누르세요> u ing diyan i jergi ba i bithe weilere ba i hafan iduri. wang doo hvwa. joocang sei bithe. 우 잉 댠 이 저르기 바 이 빝허 워이러러 바 이 하판 이두리. 왕 도오 후와. 조오창 서이 빝허. 무 영 전 의 등 곳 의 글 일할 곳 의 관리 이두리. 왕 도 화. 조창 등의 글. si yang ci jihe urse de bireme wasiha. 시 양 치 지허 우르서 더 비러머 와시하. 서 양 으로부터 온 사람들 에 널리 내려준다. be hese be gingguleme dahafi. elhe taifin i dehi sunjaci aniya si yang ni niyalma lung an guwe. be hiyan xi sebe. 버 허서 버 깅우러머 다하피. 얼허 타이핀 이 더히 순자치 아냐 시 양 니 냘마 룽 안 궈. 버 햔 쓰 서버. 우리들 조서 를 공경하게 따르고. 강 희 의 40 5년째 해 서 양 의 사람 용 안 국. 박 현 사 등을. dehi nadac...

아니 순장이 부끄러워? 부끄럽냐고?

  후금과 청의 초기 사료에는 순장하는 것을 당연히 아무 거리낌 없이 기록하였습니다. 게다가 한을 따라 순장하는 것을 명예롭게 생각하였고 이는 남녀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 일례로 홍 타이지가 죽은 지 하루도 되지 않아 니루 장긴(니루 어전)인 돈달리와 안달리는 죽어서 홍 타이지의 곁을 지키겠다고 순장을 자처하였습니다. ​ 홍 타이지의 죽음을 참지 못하고 따라 죽은 장수들! ​ 여진족의 순장 문화는 그 역사가 오래되었는데 선대 금나라 이전 시절에도 순장문화는 보편화되어 있었습니다. ​ 노비를 산 채로 불태우는 여진족 순장 소반(燒飯) ​ 홍 타이지는 병자호란 직후 조선 여자들을 괴롭히는 만주족 여자들에게 순장시켜 버리겠다는 위협을 가하기도 하였습니다. ​ 질투심에 조선 여자를 고문하던 청나라 여자들 ​ 제가 일전에도 연재한 적이 있었는데 누르하치는 부친 탘시 사후 어릴 때 자신을 학대하던 계모 나라 컨저도 죽였습니다. 이는 원초적 만문 사서인 현행전례(내국사원당)에 버젓이 기록되어 있는데 다른 사서에는 모두 삭제되어 있지요. 아마 제 추측으로는 아버지 탘시의 시신과 함께 순장을 강요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일로 나라 컨저의 동생 삼잔이 반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또한 누르하치 사후 홍 타이지는 아버지의 유훈(내가 죽은 후를 기다려 반드시 순장하도록 하라!)을 들어 아바하이 및 후첩들인 아지건과 타인차 3인을 순장시킵니다. 또한 누르하치의 푸진이자 망굴타이의 모친 푸차 군다이도 첩 타인차의 고발(밤중에 2차례 군다이가 다이샨과 만났다)로 인해 이혼당하고 결국 망굴타이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데요. 실상 당시 군다이의 나이를 생각하면 아들격인 다이샨과 부적절 관계를 맺었을 가능성은 매우 낮고, 군다이가 다이샨 뿐만 아니라 홍 타이지에게도 똑같이 음식을 보내는 등 잘 보이려 한 정황이 있습니다. 이때 군다이가 다이샨을 만난 것은 누르하치가 자신의 사후 [자신의 부인들을 맏아들인 다이샨이 잘 보살피게 하리라!] 라고 말한 것을 군다이가 듣고 미리 다이샨에게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