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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21의 게시물 표시

남한산성 홍 타이지는 만문 조서를 보냈는가?

  병자호란 당시 홍 타이지와 인조 사이에 오간 문서의 내용은 만문과 한문 두가지 내용이 있어, 이미 일전의 연재에서 번역하여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만문노당  1636년 11월 25일~12월 30일  1부~65부 내국사원당 1637년 1월 1일~1월24일 1부~30부 내국사원당 1637년 1월 24일~2월 30일 연재 예정 청실록  1637년 1월 1일~7월 3일  1부~51부 만주어 삼전도비 번역 속잡록 1638년 7월 16일 기록에는 인조가 명 진도독에게 보내는 문서를 인용하며 인조가 진도독에게 남한산성의 일을 설명하며 국서 관련도 언급하였는데요. 이 기록에는 남한산성 포위 당시 용골대 등이 보낸 국서가 언문이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즉 이 언문은 만주문으로 판단됩니다. 홍 타이지의 조서를 한글로 번역하고 써서 인조에게 보낼 가능성은 거의 없지 않겠습니까? 속잡록4 무인년 1638년 7월 16일 인조가 진도독(陳都督)에게 보내는 자문(咨文)中 -7월 16일신시와 유시에 해무리가 지다. 21일 사시와 미시에도 햇무리가 지다. ○ 진도독(陳都督)에게 주상이 자문(咨文)을 다음과 같이 보냈다. -1월 2일에 차인(差人)  용골대(龍骨大)가 성밑에 와서  언문 으로 쓴 격문 을 던져 보였는데, 거기에 쓰기를,  “대청국(大淸國) 관온 인성황제(寬溫仁聖皇帝)는 조선 국왕에게 조서로 유시하노라.  -또 지난해 본국에서 변신(邊臣)들에게 유시한 문서 한 통을 가지고 우리에게 도로 보이며 아울러  언문으로  써 왔는데,  “나라 운수가 불행하여 졸지에 정묘(丁卯)의 변을 당하였다. 하는 수 없이 권도로 그들과 화친을 허락하였더니,   10년 동안에 계학(溪壑) 같은 욕심이 만족함이 없어 공갈이 날로 심하니, 이는 참으로 전고(前古)에 없는 수치다.  -그 후  본월 17일에 용골대(龍骨大)가 또 와서 격문(檄文)을  언문 ...

홍 타이지 죽다! 10부-순치제 제위에 오르다!(연재 종료)

  1부-전조 증상 2부-급사(앉아서 죽다) 3부-사망 2일차 태종을 따라 죽은 장수들! 4부-후계자는 없다! 5부-친왕회의 하루전 치열한 암투! 6부-도르곤을 협박하는 무장들과 호오거의 야심! 7부-바야라군 황궁포위, 오배가 칼을 차고 회의장에 난입하다! 8부-친왕회의 푸린 추대! 9부-뒤끝! 피바람이 불다! 황기 무장 들은 자신들의 뜻대로 붐부타이의 아들 푸린이 황제에 오르게 되자 모든 황기 장수와 소속 문무대신들을 이끌고  자체적인 맹세식을 성대하게  치릅니다. 이날 참석한  정황기, 양황기 관리들은 총 220여명 에 이르렀습니다. 이들은 순치제에게 충성을 맹세하였고 앞으로 전횡을 일삼을 도르곤을 견제하게 됩니다. 후에 도르곤이 죽자 도르곤을 역적으로 몰아버린 세력도 이 황기 무장들이었지요. 강희제를 보필한 이들도 이들이었고요. 청실록 세조 1643년 8월 22일 기사中 ○1643년 8월 22일에 양황기 대신, 시위 등이 천지에 맹세하며 고하여 말하길    <투르거이, 바인투, 탄타이, 타잔, 시한, 도르지, 오치르상,  박봉, 일던, 어르커 다이칭, 두르마, 곡세, 필력극도,     처르거니, 오치르, 궁가다이, 소놈, 처르거이, 두라이,  오보이(오배) , 타스하이, 도르지, 서러, 차야하,  달운,     아로합, 랭승기, 새랭, 낙목제, 상기, 아상, 낭노극,  만주석리, 희복, 범문정, 강림, 달아제,  소닌(색니) , 액이격도,     아흑, 파합, 합세둔, 배산, 고납대, 희이간,  진태, 액이필흑, 포극사, 섭극새, 이이도제,     동아뢰, 수이, 아라밀, 목성격, 갈이합도, 포아습례,  포안, 덕마호,  어비룬(알필륭) , 납이매, 도록회, 새릉, 소반대),     파세태, 사제달라, 격흑례, 아란시, 아민, 작라극패,...

홍 타이지 죽다! 9부-뒤끝! 피바람이 불다!

  1부-전조 증상 2부-급사(앉아서 죽다) 3부-사망 2일차 태종을 따라 죽은 장수들! 4부-후계자는 없다! 5부-친왕회의 하루전 치열한 암투! 6부-도르곤을 협박하는 무장들과 호오거의 야심! 7부-바야라군 황궁포위, 오배가 칼을 차고 회의장에 난입하다! 8부-친왕회의 푸린 추대! 도르곤이 황기 무장들의 뜻대로 푸린 추대를 선언하고 자신과 지르가랑이 보정대신이 될 것이라며 회의를 끝내자 홍 타이지의 9남 푸린이 황위에 오르게 됩니다. 이때 푸린의 나이 겨우 6세였습니다. 이는 호오거와 도르곤이 다투는 사이 황기 무장들이 그 틈을 파고들어 뜻을 관철시킨 것이었지요. 1. 황기 무장 6명의 사적인 맹세식 황기 무장들은 푸린 옹립이 성공하자 즉각 함께 모여 맹세식을 갖습니다. 청사고 소닌 열전中 소닌이 탄타이, 투라이, 궁가다이, 시한, 오보이와 삼관묘에서 맹세하였는데 <맹세컨대 우리 6명이 한 몸과 같이 어린 임금을 보좌하겠노라!> 2. 친왕+군왕 맹세식 청실록 1643년 8월 14일 기사中 황제의 승천을 맞이하여 이에 호쇼이 도롱오 친왕 다이샨이 여러 왕과 버이러, 버이서, 공작과 더불어 문무의 뭇신하들을 소집하여 제위가 오랫동안 비어 있음을 불가하니 대행황제(태종)의 9남 푸린을 엎드려 바라보니  천성이 재주와 지혜가 두루 넓으며 행동거지가 바르고 들어맞으니 이에 한마음으로 받들어 추대하기로 의논을 정하였다. 황제의 위를 이어받으니 함께 추대하기로 글을 써 맹세하였고 천지에 고하였는데 왕들이 맹세하여 말하길 < 다이샨, 지르가랑, 도르곤, 호오거, 아지거, 도도 , 아다리, 아바타이, 로로혼, 니칸, 보로, 쇼토, 아이두리,  만다하이, 탄제, 퍙구, 보호토, 탄제객, 호토 등은 불행히도 선제의 승하를 당하여  나라가 주인이 없는 것은 불가하니 함께 의논하여 선제의 아들 푸린을 받들어 대위를 계승하게 하나이다.  이후로 선제가 정한 법도를 따르지 않거나 충성을 다하지 않거나   황상...

홍 타이지 죽다! 8부-친왕회의 푸린 추대!

  1부-전조 증상 2부-급사(앉아서 죽다) 3부-사망 2일차 태종을 따라 죽은 장수들! 4부-후계자는 없다! 5부-친왕회의 하루전 치열한 암투! 6부-도르곤을 협박하는 무장들과 호오거의 야심! 7부-바야라군 황궁포위, 오배가 칼을 차고 회의장에 난입하다! 마침내 8월 14일 정황기/양황기 바야라 병들이 황궁을 포위한 상태에서 친왕4명과 군왕2명은 회의에 참석하였습니다. 황기 무장들이 칼을 휴대하고 회의장에 난입하여 태종의 황자가 아니면 오직 죽음뿐이라는 협박을 하는 순간 도르곤은 이들의 퇴장을 명령합니다. 여러 왕과 대신들이 동서의 복도에 열 지어 앉았는데  소닌이 바투루 오보이와 머리 높여 말하길 황자를 옹립해야 한다고 하였다. 머르건 친왕 도르곤이 영을 내려 잠시 물러나게 하였다. 다이샨, 지르가랑, 도르곤, 호오거, 도도, 아지거는 회의를 시작합니다. 간략하게 이들의 심중 의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다이샨 : 호오거 or 도르곤 2. 지르가랑 : 호오거 3. 도르곤 : 도르곤 4. 호오거 : 호오거 5. 도도 : 도르곤 or 도도 6. 아지거 : 도르곤 ------------------------------------------------------------------ 그러나 황기 무장들이 황자 아니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협박에 도르곤, 다이샨이 먼저 흔들립니다. 1. 아지거+도도 ☞ 도르곤 추대! ☞ 도르곤 머뭇거림 바투루 친왕 아지거와 어르커 친왕 도도는 머르건 친왕 도르곤이 황위에 오르길 권하였는데 머르건 친왕 도르곤은 결정을 미루고 허락하지 않았다. 2. 다이샨 ☞ 호오거 추대! ☞ 호오거 거부 및 퇴장 다이샨이 발언하여 말하길 <호오거는 황제의 장자이니, 마땅히 대통을 이어야 한다!>하였다. 곧 호오거가 말하길 <복은 적고 덕은 박하니, 감당할 바가 아닙니다!> 굳게 사양하고 물러나 가버렸다. 3. 도도 ☞ 자신 추대 ☞ 도르곤에 의해 저지 이에 어르커 친왕 ...

홍 타이지 죽다! 7부-바야라군 황궁포위, 오배가 칼을 차고 회의장에 난입하다!

  1부-전조 증상 2부-급사(앉아서 죽다) 3부-사망 2일차 태종을 따라 죽은 장수들! 4부-후계자는 없다! 5부-친왕회의 하루전 치열한 암투! 6부-도르곤을 협박하는 무장들과 호오거의 야심! 마침내 차기 황제를 결정짓는 친왕회의가 벌어지는 1643년 8월 14일 당일. 전날 호오거를 찾아간 정황기/양황기 무장들은 해산하지 않고 그대로 휘하 바야라군을 소집합니다. 당시 황궁과 태종의 시신이 안치된 숭정전은 황제 직속 정황기/양황기 바야라군이 호위하고 있었고,  태종 사후 바야라 군에는 당연히 비상이 걸린 상태였지요. 모든 니루 어전이상의 만주족들은 모두 변발을 자른 상태였으며, 친왕 회의가 결정된 이날 황궁 안팎에는 살벌한 분위기가 감지되었습니다. 이날 새벽 해가 뜰무렵 정황기 바야라 투 장긴 투라이와 양황기 바야라 투 장긴 오보이(오배)는 휘하 바야라에 명을 내려 완전 무장을 하고 황궁을 포위합니다. 청사고 소닌 열전中 여명에 2황기(정황기/양황기) 대신들이 대청문에서 맹세하였고, 2기 바야라 병으로 하여금 활과 화살을 차고 궁전을 빙 둘러서서 군을 인솔하고 숭정전에 이르렀다. 이런 살벌한 분위기 속에 4명의 친왕과 2명의 군왕이 입궁하여 회의장으로 들어갑니다. 회의장 문밖 복도에는 모든 왕, 버이러, 버이서, 공작, 대신들이 열 지어 대기하고 있었지요. 그야말로 제국의 운명을 결정짓는 살벌한 회의, 말 한마디 잘못 꺼내면 3족을 멸할 것 같은 살풍경이 펼쳐지고 있었지요. 오직 6명의 친왕과 군왕만이 발언권이 있었고, 외번왕이든 버이러든 황족이든 숨소리조차 못 낼 그런 부위기 속에서 무장을 한 황기 장수들이 회의장에 난입하여 큰 소리로 외칩니다. 심양장계 1643년 8월 26일 보고서中 승정원은 뜯어보라 비밀 8월 26일. (중략) 정책의 회의가 미처 하나로 이르지 못하였는데  황제의 수하 장령의 무리들이 검을 차고 앞에서 말하길 <우리 무리는 황제께서 먹이고 황제께서 입게 하셨으며, 양육한 은혜를 하늘과 같이 크게 베푸시었다...